[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이러니 복지부 해체하라지
보건복지부가 모처럼 머리를 썼다. ‘원격의료’를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의료’로 바꾸고 적용 대상도 크게 제한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수정안은 국회에서 퇴짜를 맞았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의사협회와 거래(?)를 시도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 이익단체에 우롱만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복지부의 눈물겨운 노력이라고 하기엔 너무 기가 막힌다.

정부가 ‘영리병원’을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으로 바꾸더니 자회사에만 일부 허용한다는 식으로 꼬리를 내렸던 일이 바로 엊그제다. 매사를 꼼수로 해결하려고 드니 되는 일이 있을 턱이 없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정부의 비굴한 패배요, 의협의 비열한 승리다. 정부의 무능함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원격의료는 더 멀어졌다.

국민도 기업도 우롱당했다

그런데 놀랍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복지부, 정치권, 의협이 저마다 전리품을 하나씩 챙겼다. 복지부는 원격의료 전담부서를 정규직제로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직역단체가 거부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강행해야 하느냐며 반대한 정치인들은 곧 의협을 찾아가 표를 달라고 할 게 분명하다. 의협은 의협대로 원격의료 원천봉쇄에 성공하며 자신들이 복지부 위에 있음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의협·복지부·정치권, ‘철의 삼각동맹’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고 보니 진짜 우롱당한 건 바로 소비자요, 국민이다. 봉이 따로 없다. 툭하면 소비자 후생을 들먹이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왜 보고만 있나. 멀쩡한 국내 시장 놔두고 기업도 떠돌이 신세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헬스케어 플랫폼 ‘S헬스’를 내놓고 모바일 원격의료를 시작한다고 한다. 비트컴퓨터는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에서 상용화하지 못하는 원격의료를 왜 우리한테 팔려고 하느냐”고 할 때마다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이게 정말 누구의 나라인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을 한들 뭐하나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원격의료비 지출이 증가한 걸 두고 “대면진료 대체보다 추가 의료 수요 창출 효과가 훨씬 더 크다”는 분석이 들려오면 뭐하나.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다 전면 허용으로 돌아선 일본조차 이젠 먼 나라 얘기다(그것도 정부와 의협 간 별다른 마찰도 없이). 중국이 쫓아온다며 호들갑을 떠는 나라가 중국에 인터넷전문병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말에는 귀를 닫는다. 의료전달 플랫폼 자체가 확 뒤집어질지 모를 판국인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정부도, 정치권도 참으로 우습다. 인공지능의 활용 기대가 가장 높은 분야로 단연 의료가 꼽힌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게 원격의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인공지능 왓슨을 통한 환자의 진단·처방도 법 위반(빅데이터 수집 및 활용은 물론이고), 원격의료도 법 위반이다. 차라리 떠들지나 말 것이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나 ‘예기치 못한 효과’가 없는 경우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은 언제부터 의료기술 생살여탈권을 의협에 주었나. 누구는 복지부를 ‘보건’과 ‘복지’로 분리하면 된다고 말한다. 또 한국공학한림원은 차기 정부를 위한 정책총서에서 복지부 연구개발(R&D) 예산을 다른 부처로 넘기라고 요구한다. 그보다는 있으나 마나 한 부처가 돼 버린 복지부를 아예 해체하는 건 어떤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