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체육관 선거'의 역설…지지율 10%대 '중국의 애완견' 캐리 람 행정장관 당선
이변은 없었다. 홍콩 반환 20주년을 맞은 올해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홍콩 행정특구를 이끌 5대 수반에 ‘중국의 애완견’으로 불리는 캐리 람 전 정무사장(총리·59)이 당선됐다. 1194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람 후보는 과반인 777표를 얻었다. 투표권이 없는 홍콩 시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50% 안팎의 지지율로 압도적 1위를 달린 존 창 전 재정사장(장관·66)은 365표를 받았고, 우궉힝 전 고등법원 판사(70)는 21표를 얻는 데 그쳤다. 2014년 홍콩의 자치를 요구하며 ‘우산혁명’을 시도한 홍콩 시민들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캐리 람 홍콩 첫 여성 지도자로 등극

26일 오전 홍콩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치러진 행정장관 선거는 친중파인 람 후보와 홍콩 자치를 중시하는 창 후보의 2파전 양상이었다. 결국 중국 지도부의 낙점을 받은 람 후보가 승리했다. 람 당선자는 향후 중국 국무원 전체회의의 승인을 거친 뒤 오는 7월1일 임기 5년의 홍콩 행정장관으로 취임한다.

홍콩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람 당선자는 홍콩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예산부, 재무부, 사회복지부 등을 두루 거쳤으며 2012년 7월에는 홍콩 행정부 2인자인 정무사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각료 시절 단호하고 소신있는 일처리로 시민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2014년 10월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 때 강경 진압을 주도해 ‘중국의 애완견’이란 비판을 받았다. 중국 지도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일찌감치 람을 차기 홍콩 행정장관으로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 이뤄진 시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람 당선자는 지지율이 10~20%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금융인, 기업인, 전문직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홍콩 업무를 관장하는 장더장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지난 2월 초 “캐리 람은 중국 중앙정부가 유일하게 지지하는 인사”라며 노골적으로 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힌 것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홍콩 최대 재벌인 리자청 청쿵실업 회장도 투표를 열흘 앞둔 이달 16일 람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홍창표 KOTRA 홍콩무역관장은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인, 금융인 등 기득권층으로 이뤄진 선거인단이 중국 정부의 의중을 무시하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선제 요구하며 반발하는 홍콩 시민

람 당선자는 당선 후 기자회견에서 “홍콩이 여러 가지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회 분열을 치유하는 걸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콩 시민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홍콩 자치를 중시하는 범민주파 시민단체 민간인권진선(민진)이 주축이 된 1000여명의 홍콩 시민은 이날 도심에서 “우리 정부는 스스로 결정한다” “1인1표 완전한 직선제 도입” 등을 외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아우녹힌 민진 대표는 “어떤 후보가 당선돼도 간선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 포린폴리시는 “2014년 우산혁명에 참여한 대다수 홍콩 시민은 이미 깊은 좌절과 정치적 허무주의에 휩싸여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범민주파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10~19일 시행한 온라인 가상투표에서 주최 측은 100만명의 시민 참여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참여 인원은 6만5000명에 불과했다. 2012년 행정장관 선거 직전 시행한 가상투표에 약 22만명이 참여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홍콩의 한 외교소식통은 “캐리 람이 취임 이후 홍콩 사회를 통합하고 원활하게 이끌어나갈지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