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혜 기자
민지혜 기자
파네라이 IWC 롤렉스 예거르쿨트르 등 명품시계 브랜드들은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스트랩(시곗줄)을 내놓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시계 마니아 사이에서 시곗줄을 갈아 끼우는 취미, 이른바 ‘줄질’이 확산되면서다. 줄질의 매력은 시곗줄만 바꿔도 마치 다른 시계를 찬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줄질을 즐기는 명품시계 마니아 사이에서 ‘가죽줄 장인’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오중하 아뜰리에 뒤 뀌르(Atelier Du Cuir) 대표다. 아뜰리에 뒤 뀌르는 프랑스어로 가죽공방이란 뜻이다. 14년째 혼자 시곗줄 공방을 경영하며 온라인몰(www.ducuir.com)도 운영하는 오 대표를 경기 안양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났다.

오 대표는 “직접 가죽을 수입해 가공, 염색, 바느질하며 공을 들이기 때문에 15만~35만원대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임에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연다”며 “요즘은 마니아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주문이 몰리지만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체력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한 달에 15~20개 정도만 만든다”고 말했다.

“명품시계엔 명품 시곗줄을”

오 대표가 처음 시곗줄을 제작한 건 2003년. 경희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그는 스위스 명품시계 파네라이 마니아였다. 그는 시곗줄을 갈아 끼우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파네라이는 시계를 사면 줄을 교체할 때 필요한 드라이버와 별도의 시곗줄을 주기 때문에 줄질하기 좋은 브랜드로 유명하다. 그러나 당시 미국 등 해외에서 일부 판매하던 파네라이 전용 시곗줄은 바느질 마감이 꼼꼼하지 못하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국내에선 구할 수조차 없었다. 좋은 시계에 돈을 들이는 것만큼 시곗줄도 고급 제품을 차고 싶었던 그는 줄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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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집에 있던 오래된 가죽가방을 칼로 잘랐다. 좋은 가죽은 아니었지만 직접 바느질해서 파네라이 시계용 줄을 완성했다. 바느질에만 며칠이 걸렸다. 첫 ‘작품’은 역시 파네라이 마니아인 한 친구가 10만원에 사갔다. 오 대표는 “처음이라 어설프긴 했지만 내가 봐도 미국에서 판매하는 30~40달러짜리 줄보다 잘 만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오 대표가 다루는 가죽은 20~30종에 달한다. 처음엔 동대문 도매상가 가죽 수입상에서 구입한 소가죽 한 장으로 시작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연습을 반복했다. 1년 정도 지나자 가죽이 손에 익고 바느질도 익숙해졌다. 그때부터 파네라이 마니아인 몇몇 친구에게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40만~50만원짜리 시곗줄을 사서 끼던 파네라이 마니아들은 오 대표가 만든 시곗줄의 품질과 가격에 만족했다. 타임포럼 등 온라인 시계 커뮤니티에 판매 글을 올리면서 그를 찾는 소비자가 늘기 시작했다. 지금도 파네라이용 시곗줄 주문이 가장 많다. IWC, 롤렉스, 애플워치 제품을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가죽 공예에 필요한 도구는 대부분 직접 제작해 쓰고 있다. 도구를 도매상에서 구할 순 있지만 불편한 데다 비싸기 때문이다. 그가 구입해서 쓴 도구는 칼이 유일하다. 시곗줄에 새기는 브랜드명과 제품별 시리얼 넘버를 새기는 낙인도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첫해 A로 시작해 알파벳에 숫자를 붙여 시리얼넘버를 만들었고 한정 수량을 넘기면 다음 알파벳으로 넘어갔다. 사업을 한 지 14년째지만 17번째 알파벳인 Q로 시작하는 시리얼넘버를 달고 있다. 원래 1년에 알파벳 한 개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주문 수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디자인, 센스 갖춰야

오 대표가 다루는 가죽 중에는 관리하기 까다로운 코도반도 있다. 말 엉덩이 부위 가죽이다. 명품 수제화에 주로 쓰는데 가죽신발을 꾸준히 관리할 줄 아는 사람만 사 갈 정도로 고급 가죽으로 분류된다. 그는 미국 유명 가죽판매회사에서 코도반을 수입해 3년째 테스트만 하고 있다. 시곗줄로 제작하는 작업도 까다롭지만 소비자에게 사후 관리법까지 안내할 수 있을 때 만들어 팔겠다는 게 오 대표의 고집이다. 그는 “코도반 시곗줄을 관리해줄 수 있는 수제화 전문 숍과 사후서비스를 논의 중”이라고 했다.

그가 시곗줄 한 개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꼬박 사흘이다. 한 제품에만 오롯이 매달렸을 때 얘기다. 가죽을 잘라서 본드로 붙이고 말린 뒤 재단을 해서 바느질하고 옆부분에 왁스칠을 해 깔끔하게 마감한다. 또 말리는 시간을 거쳐 파트별로 조립해서 구멍을 뚫고 버클을 단 뒤 브랜드명과 시리얼 넘버 낙인을 찍는다. 무엇보다 중간중간 말리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염색 과정까지 거치면 시간은 더 걸린다. “그저 많이 팔기 위해서라면 이 일을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제대로 말리지 않은 시곗줄은 오래 쓸 수 없고 품질도 떨어지게 마련이죠. 제대로 된 시곗줄을 만들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저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겁니다. 만약 사업 욕심을 부려서 다른 사람을 고용했다면 지금의 퀄리티가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오 대표가 지금까지 1인 공방을 고집하는 이유다.

언젠가는 기계공정 도입 계획

직업병도 생겼다. 정교한 작업을 하다 보면 어깨와 목에 무리가 간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시곗줄을 완성했을 때의 희열이 더 크다고 했다. 장기 계획을 묻자 그는 “언젠가 공정화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작업은 기계를 쓰되, 이를 잘 다루는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기계를 도입하겠다는 이유는 ‘진짜 예술작품처럼 1년에 몇 개밖에 만들 수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을 공들여 제작하기 위해서’다. 그는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새겨넣는 등 예술품 같은 시곗줄을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가죽 공예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물었다. 그는 ‘센스’를 꼽았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제품이 상품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손기술만 갖고는 기술자에 그칠 수밖에 없어요. 나만의 디자인이 있어야 오래 갈 수 있죠. 돈 내고 갖고 싶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 줄 아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가죽공예 입문하려면…
소규모 공방서 워크숍…대한공예협회는 온라인 강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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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가죽공예를 직업으로 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죽 제품을 제작해 팔기도 하고 수준별 공예 강습을 해주는 공방이 많아졌다. 시간이 없는 직장인 사이에서도 주말을 활용해 지갑, 벨트, 네임태그, 여권지갑 등을 직접 만드는 취미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가죽공예를 쉽게 접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공방에서 하는 강습을 듣는 방법이 있다. 공방들은 단순한 이름표부터 시작해 벨트, 지갑 등 제품을 완성하는 코스별로 수강생을 모집한다. 가죽을 잘라 바느질하는 방법, 이니셜 등을 각인하는 방법, 도구 사용법 등 입문자들이 잘 모르는 내용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다.

독학으로 배우고 싶다면 인터넷에서 가죽 원단과 공예도구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가죽 공예의 기초》 《친절한 가죽공예 DIY》 《실전 가죽공예》 등 많은 서적이 나와 있다.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초보자를 위해 사단법인 대한공예협회(www.koreahand.or.kr)가 운영하는 온라인 강의를 들어도 된다. 직업으로 가죽공방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지도사 자격증도 이 협회를 통해 취득할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국가 지정 자격증 관리기관이기 때문에 공방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이 이용하기에 좋다.

오중하 아뜰리에 뒤 뀌르 대표는 처음부터 도구를 다 구입해서 사용하기보다는 하나씩 배우면서 필요한 도구를 살 것을 추천했다. 초보자들이 가죽공예를 처음 접할 때 참고하기 좋은 책으로는 마이클 발레리의 《The Leatherworking Handbook》을 추천했다. 가죽재료와 도구, 핵심 제조기술 등을 사진과 함께 소개해 입문자들이 이해하기 좋다는 설명이다. 번역본이 나오지 않아 영어 원서로만 구할 수 있다.

안양=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