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침몰 후 물 밖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1073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일부 미수습자 가족과 시민들은 ‘인양이 이렇게 늦어진 이유가 무엇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양 지연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세월호 인양 여부를 결정하기부터 쉽지 않았다. 인양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갈등은 물론 세월호 실종자 가족 내부에서도 한동안 인양과 수색 지속을 둘러싼 의견 차이가 컸다.

2014년 11월11일 정부가 295번째 사망자 시신 수습을 끝으로 세월호 수색을 종료하고 나서야 인양 논의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중앙안전대책본부는 세월호 침몰 1년 만인 2015년 4월22일 인양 방침을 확정했다.

당시 정부는 이듬해인 2016년 6~7월께 인양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여러 차례 인양 작업을 가로막았다.

우선 선체를 인양하려면 안에 남아있는 기름을 제거해야 하는데 예상보다 양이 많아 제거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공기탱크로 부력을 생성해 세월호 뱃머리를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가 보유한 부력재가 부족해 추가 설치에 한 달을 더 허비했다. 선체가 가라앉은 지형이 단단한 퇴적층이라 땅을 파서 인양 시설을 설치하는 데도 5개월이 소요됐다.

오락가락한 인양 방식도 발목을 잡았다. 애초 정부는 기술적 검토를 거쳐 해상크레인과 플로팅독을 이용해 선체를 인양하는 방식을 채택했지만 지형 등 여건이 맞지 않아 고전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