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친기업문화를 확산시키려면
종잡을 수 없는 대내외 환경 변화로 전에 없던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게다가 탄핵 정국으로 드러난 세대·이념 갈등과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 기조 등은 국내 경제에 더더욱 짙은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탄핵 정국에 이어 바로 대선 정국이다. 헌법재판소 평결문에 따르면 기업들은 지난 정권으로부터 ‘재산권’과 ‘경영의 자율권을 침해’당했으나 이들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정치권은 경쟁적으로 ‘기업 때리기 법안’을 내놓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경제민주화에서 더 나아가 재벌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기업의 고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39 현상’으로 대변되는 인력 유출 문제도 걱정거리다. 139 현상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이 해외 기술인력을 스카우트하겠다며 1년치 연봉의 9배를 3년간 보장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반도체 1위 국가 한국의 고급 인력을 향하고 있으며 국내 반도체업계는 인력 엑소더스를 우려하는 상황이 됐다. 중국의 인력 빼가기가 본격화하면 한국의 1등 수출 상품 반도체의 앞날은 뻔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행 꿈을 꾸는 이들을 애국심 운운하며 비난할 수 있을까.

지난해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이들이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호(好)실적 덕분이다. 인터넷엔 비난 댓글이 가득 찼다. 만일 외국 기업이 경영 실적이 좋아 이런 규모의 성과급을 줬다는 기사가 나오면 댓글은 어땠을까. 전자와 후자가 어떻게 다를지 언급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전국 각지의 산업현장과 대도시 한복판 빌딩의 꺼지지 않는 불이 오늘날 세계 10대 경제강국을 만들었다. 이런 ‘죽을 힘’과 무관하게 반(反)기업 정서는 커져만 간다. 이렇게 인정은 못 받고 비난만 받을 바에야 본사를 아예 해외로 이전하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게 낫다는 푸념이 나오는 게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창업 1세대 한국 대기업은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사시로 삼아 왔다. 하지만 기업들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불가피한 공존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70%는 반기업 정서가 강하다. 그런데 그 70%가 가장 취업하고 싶어 하는 곳은 다름 아닌 대기업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중성이라고 얘기하기엔 너무 극단적이다. 불가피한 공존의 결과다. 반기업 정서가 바뀌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반기업 정서의 대상이나 주체 모두 변해야 하지만 기업이 먼저 변하고 진정성 있는 손을 내미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기업 정서의 형성은 기업이 자초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 최대 에너지화학 회사인 SK이노베이션에서 전체 임직원 중 절반 가까이가 1인 1후원 계좌 약정을 해 총 3억7000만원을 모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회사 돈으로 내는 성금들과는 따스함과 진정성에서 차원이 다르다. 개개인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순간에 반기업 정서를 바꿀 수는 없다. 작더라도 사회를 향한 진정성 있는 울림이 축적돼야 한다. 그래야 반기업 정서를 바꾸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것이 불가피한 공존의 시대에 기업이 더 발전하는 길이기도 하다.

김정덕 < 중앙대 교수·경영정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