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 ‘미래에셋3억만들기 좋은기업’ ‘미래에셋인디펜던스’. 10년 전인 2007년 3월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은 주식형펀드들이다. 현재 이 상품들의 설정액은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5년으로 기간을 좁혀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 ‘1조원 클럽’에 들었던 8개 주식형펀드 중 ‘KB밸류포커스’만 1조원대 몸집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다시 주식이다] 인기 펀드일수록 상승에 한계…당장 수익률 높다고 맹신 말아야
펀드로 돈을 번 사람이 드문 이유

국내 펀드 시장에는 장기 투자자가 많지 않다. 판매사의 추천에 넘어가 수익률이 ‘꼭지’일 때 펀드에 가입했다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1년이 안 돼 펀드를 정리하는 투자자가 절반에 육박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펀드를 좀 안다는 투자자도 지수가 일시적으로 떨어졌을 때 펀드를 샀다가 5% 안팎 이익이 나면 환매하는 ‘짧은 방망이’ 전략을 고집한다. 10년 넘게 인기를 끄는 장수 펀드도, 펀드로 돈을 많이 번 투자자도 쉽게 나오지 않는 배경이다.

펀드매니저가 종목을 선별하는 국내 주식형펀드들의 2003년 이후 수익률은 평균 9.6%다. 만족스러운 수익률은 아니지만 물가 상승률 정도의 이익은 냈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거둔 실제 수익률이 이보다 낮다는 데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펀드 자금 흐름을 감안한 투자자들의 실제 수익률을 6.5%로 추정했다. 매매 타이밍을 잘못 잡은 투자자가 많은 탓에 지표상 수익률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박희운 삼성자산운용 상무는 “연평균 29%의 수익률을 기록한 전설의 투자자 피터 린치가 운용한 마젤란펀드 가입자도 절반이 손해를 봤다”며 “인기 있는 상품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단기 투자로는 의미있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 흐름에 정통한 자산운용사 고위 임직원의 펀드 투자법은 개인들과 사뭇 다르다. 판매사 추천 상품은 투자 후보군에서 아예 빼놓는 경우가 많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못난이 펀드’에 투자해야 시장 흐름이 바뀔 때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국내 주식시장의 장기 사이클은 길어야 3~4년”이라며 “지난 2~3년 시장 평균 수익률을 밑돌았지만 매니저와 투자 스타일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펀드에 투자하면 성공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PER과 PBR은 펀드에도 있어

펀드에도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있다. 개별 펀드가 담은 종목의 밸류에이션(실적이나 자산 대비 주가 수준)을 편입비율을 따져 계산한 수치다. 이 지표를 보면 펀드가 적절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단기간에 PER과 PBR이 급등한 펀드라면 굳이 지금 시점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일부 자산운용사 직원이 최근 1년 수익률이 -17% 안팎인 ‘메리츠코리아’ 펀드를 사들이고 있는 것도 PER 때문이다.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메리츠코리아 펀드의 PER은 13.74배로 유사 상품군 평균치(9.33배)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수익률 고점 구간이던 2015년 7월(PER 21.5배)과 비교하면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펀드 크기(설정액)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덩치가 작은 펀드도 위험하지만 큰 펀드도 권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설정액이 1조원을 넘으면 수익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이른바 ‘1조원의 저주’다.

김현전 흥국자산운용 대표는 “펀드 덩치가 커지면 기존 투자 전략을 포기하고 대형주를 담을 수밖에 없다”며 “매니저가 효율적으로 굴릴 수 있는 규모는 3000억원 안팎”이라고 말했다.

펀드 매수 타이밍에 자신이 없으면 매달 펀드에 자금을 넣는 적립식 투자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팁이 있다. 귀찮더라도 시장에 따라 조금씩 납입 금액을 달리하는 전략을 쓰면 수익률을 더 올릴 수 있다.

코스피200지수를 따라 움직이는 인덱스펀드에 2002년부터 2017년 2월까지 15년간 적립식으로 투자한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매달 정해진 날짜에 기계적으로 100만원씩 넣은 투자자는 64.13%의 수익률을 챙겼다. 첫달 100만원을 넣어 한 달 뒤 110만원이 됐다면 두 번째 달엔 90만원을 넣는 식으로 이익과 손실을 포함한 월평균 납입액을 100만원으로 맞추는 전략을 쓰면 누적 수익률이 102.89%까지 올라간다. 펀드 매수 평균 단가가 낮아진 효과가 수익률로 나타난 것이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