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만에 바뀐 가계대출 통계…한은 '숫자 집착'이 부른 해프닝
한국은행은 잘못된 가계대출 통계를 발표한 금융통계부장을 교체하고 금융통계팀장은 팀원으로 직위해제한다고 14일 발표했다. 경제통계국장과 담당과장에게는 엄중경고 조치를 했다.

한은이 이례적으로 문책성 인사를 발표한 건 지난 9일 있었던 ‘가계대출 통계 소동’ 때문이다. 이날 한은은 올 1월 저축은행 가계대출이 9775억원 늘었다고 발표한 지 4시간 만에 실제 증가액이 5058억원이라고 수정했다. 한은의 원래 발표대로라면 1월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3년 10월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한은이 발표한 잘못된 통계는 그대로 기사화됐다. 이후 금융감독원이 한은의 통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오후 4시께 한은은 뒤늦게 통계 집계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올해부터 저축은행중앙회가 집계 방식을 바꿔 자영업 대출인 ‘영리성 대출’을 가계대출에 포함했지만 한은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 13일 오전 임원회의에서 “한은이 소중하게 지켜온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며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이번 일을 계기로 통계 편제 과정에 대한 정밀 점검을 하겠다고 했다. 저축은행중앙회 등 유관기관과 소통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촌극을 부른 건 애초에 ‘숫자 수집’에만 골몰하는 한은의 소극적 조직 분위기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은이 배포하는 자료는 불친절하기로 악명이 높다. 단순 숫자와 전월 대비 증감폭만 제시할 뿐 통계의 원인이나 그 의미, 이에 대한 한은의 평가 등 통계 해설은 생략되기 일쑤다. 한은 직원들은 ‘통계만 제시할 뿐 해설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조직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경제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료를 들춰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은 관계자는 “한 달 새 저축은행 가계대출이 1조원이나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을 때 담당자가 한 번쯤 의문을 가지고 원인을 들여다봤다면 통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국내총생산(GDP), 국제수지 등 굵직한 국가 경제통계를 책임지는 한은을 향해 “단발성 문책 인사로 끝나기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은 내부의 조직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는 안팎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성미 경제부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