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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새벽 구속되자 삼성은 충격에 빠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불구속을 자신한 삼성그룹 관계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정권의 강압에 의한 정유라 승마 지원을 이유로 기업의 일상적 경영 행위를 비리 행위로 몰고 마침내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를 뇌물죄로 몰아넣어 인신 구속까지 했다”고 개탄했다. 삼성의 한 계열사 사장도 “한국에서 기업을 하다 보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정권에서도 한진그룹은 돈을 안 냈다가 한진해운을 잃었고, CJ그룹은 권력 입맛에 맞지 않는 방송을 해 왔다는 이유로 오너 경영자가 물러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당장 오너 부재(不在)로 인해 삼성의 경영 공백이 우려된다. 삼성 관계자는 “솔직히 이 부회장 구속을 전제로 한 비상경영계획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지금부터 고민할 문제”라고 말했다. 2008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 특검 이후 2선으로 물러났을 때 이 회장은 구속된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 부회장이 수감되면서 경영을 챙기기 어려워졌다. 이 회장이 2014년부터 입원 중인 것을 감안하면 1938년 삼성그룹 창립 후 처음으로 맞는 사실상 오너 부재 상태다. 구속 기간 삼성 경영진이 이 부회장과 소통할 방법은 구치소로 찾아가 직접 면회하는 것밖에는 없다. 당분간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운영하겠지만 중요한 결정은 내리지 못하는 동면(冬眠)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검찰이 삼성 미래전략실을 압수수색한 작년 11월부터 그룹 컨트롤타워 역량의 60%는 수사 대응에 맞춰져 왔다”며 “기업 인수합병(M&A) 관련 부서 등은 개점휴업 상태”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2008년에도 사장단협의회 등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대신했지만 중요한 투자 판단은 2010년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때까지 연기됐다”며 “이 부회장이 언제까지 갇혀 있을지 알 수 없는 만큼 중요한 경영 판단은 대부분 보류될 것”이라고 했다.

삼성의 사장단 인사는 4월 이후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미래전략실 해체를 비롯한 갖가지 쇄신안 추진도 일단 중단될 전망이다. 삼성 관계자는 “쇄신안은 전적으로 이 부회장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본인의 몸이 묶인 만큼 정상적으로 추진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구상을 밝히며 모처럼 내놓은 이사회 투명성 높이기 등 각종 경영개선안도 마찬가지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역량은 당분간 이 부회장의 무죄 판결과 석방에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