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부모가 중년 자식들을 다시 '모신다면…'
이해타산으로 점철된 세상이지만 무조건적인 사랑도 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가지 않음만 못한 법.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우즈 위니컷(1896~1971)이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라는 개념을 제시한 이유다. 그는 “부모가 자신의 본능적인 욕망과 주관까지 포기하며 양육에 힘쓰지만 자식이 성장한 뒤엔 물러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자식이 안정을 느끼고 독립적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MㅋBC 주말드라마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는 자식을 ‘모시고 사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한형섭(김창완 분)과 문정애(김혜옥 분)는 4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 결혼시키는 데 평생을 바쳤다. 둘은 뚜렷한 노후 대책도 없이 근근이 살아가다 자산가인 노모 황미옥(나문희 분)에게 45평 빌라 한 층을 상속받는다.

빌라에 월세를 놓고 세계일주 여행을 떠날 날만 꿈꾸던 부부는 어느 날 신문기자로 일하던 맏아들 성훈(이승준 분)이 해직된 뒤 빚더미에 오른 것을 알게 된다. 부부는 어린 손주들이 모텔을 전전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맏아들 가족을 빌라에 들인다. 이를 시기한 변호사 겸 시사평론가인 둘째 아들 성식(황동주 분)도 가족을 이끌고 빌라에 들어온다.

정애는 염치없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오열한다. “너희들 고3만 네 번이었어. 학교 다닌 것만 다 합해도 총 64년이야. 사법고시에, 입사 시험에…. 내가 너희들 위해 싼 도시락만 해도 몇만 개는 될 거야. 너희들이 밀고 들어오면 엄마 인생은 뭐가 되니.” 정애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였지만 물러나는 시기의 완급 조절에 실패해 중년의 자식들을 다시 ‘모시게’ 된 것이다.

자식들의 가정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 사고가 터진다. 중년의 자식들은 점점 노년의 부모와 조모에게 의존하게 된다. 맏아들 성훈은 재취업에 실패해 막노동을 하던 중 사고를 겪고, 형섭과 정애는 자신들의 연금통장까지 해지해 아들에게 치킨집을 차려준다. 성식은 시사평론 방송에서 잘린 뒤 방황하다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겠다며 부모에게 손을 내민다.

“자식이 다 죽게 생겼는데 부모가 돈 쥐고 있어 봐야 무슨 소용이야. 나보다 자식이 먼저 죽게 생겼는데 무슨 의미가 있어.” 갖고 있는 현금을 모두 모아 자식들 명의로 구겨 넣으며 정애는 다시 오열한다. 노후의 마지막 보루마저 중년 자식들에게 털어 넣은 허망함에서다.

“가족이란 누군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말은 이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브다.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자식에 집착하는 다양한 어머니가 대거 등장하는 극중 상황에서 팔순 노모 황미옥은 말한다. “나중에 가면 네 자식이나 내 자식이나 똑같아져. 아니 어쩌면 생판 모르는 남이 더 나을 때가 있다니까. 그러니 자식에게 너무 집착하지 맙시다.”

극중엔 성훈과 성식의 아들이 출생 당시 병원에서 서로 뒤바뀌었다는 ‘웃픈’ 에피소드까지 나온다. 어쩌면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넣은 듯하다. 무한정 ‘방목하는 엄마’와 모든 것을 자로 재며 공부만 강요하는 ‘압박형 엄마’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변모하는 과정은 이 드라마의 숨은 백미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