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의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싣고 다니는 선박평형수를 관리하는 국제 기준이 내년 9월부터 강화된다. 기준이 엄격해지면 선박 신규 발주 규모가 5년간 30조원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업계는 ‘수주절벽’ 현상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박평형수 설비' 의무화…조선업계 희소식
2022년까지 선박평형수 처리설비 설치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8일 핀란드가 세계 52번째로 선박평형수관리협약(BWMS)을 비준하기로 하면서 이 협약이 내년 9월8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박평형수는 배의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선박에 싣고 다니는 물이다. IMO는 출항지에서 실은 물이 도착 항구에 버려지면 생태계 교란이 발생한다며 관련 협약을 마련해왔다. 30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비준에 참여한 국가의 선복량 합계가 세계 선복량의 35%에 도달한 시점부터 1년 뒤 발효한다는 조건이 걸렸다.

핀란드의 가입 결정으로 이 요건이 충족됐다. BWMS는 다른 나라 항만에서 처리가 안 된 선박평형수 배출을 금지하고 있다. 또 국제 항해를 하는 선박 내 선박평형수 처리설비(BWTS)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 항해를 하는 선박 5만여척은 2022년 9월7일 전까지 BWTS를 설치해야 한다. 협약 발효 이후 지은 배는 건조 단계에서 BWTS를 설치해야 한다.

이미 건조한 선박에 BWTS를 설치하는 데는 약 200만달러(약 22억4000만원)가 든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BWTS를 설치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선박 구조를 변경할 경우에는 비용이 더 들어간다. 2022년에 시행할 BWTS 설치 검사 비용도 선주가 부담해야 한다. 선박 정기검사 비용은 약 400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후 선박 교체주기 빨라지나

조선업계는 BWMS가 발효되면 노후 선박 교체 시기가 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BWTS를 설치하고 검사받는 데 최소 600만달러가 드는데, 20년 이상 노후 선박을 보유한 선주는 이 비용을 감수하기보다 BWTS를 설치한 새 선박을 주문하는 게 이익이라는 판단에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배는 만들어진 지 20년이 지나면 운항 성능이 떨어지고 검사비용이 늘어난다”며 “5년밖에 쓰지 못하는 선박에 600만~1000만달러가 드는 BWTS를 설치하기보다는 새로 선박을 주문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유조선의 경우 최근 10년간 연평균 32척이 해체됐는데, 20년이 넘은 선박을 해체한다고 가정할 때 연평균 82척이 해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2000년대 중반 선박 발주가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2010년 이중선체 구조가 의무화된 것”이라며 “선박 관련 국제기준 강화는 선박 해체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이며, 이는 선박 발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5년간 BWMS 발효로 인한 선박 교체 수요가 연평균 65억달러(약 7조2000억원·5년간 약 36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수주절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대형 조선사들이 일감을 확보할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내 조선기자재 업체들도 BWMS 발효를 기대하고 있다. 테크로스, 파나시아, 한라IMS 등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대표적인 선박평형수 처리설비 제작사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협약 발효 후 5년간 총 40조원 규모의 시장이 열릴 것이며, 국내 업체가 그중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