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한 연쇄살인범의 심리 다양한 '몸짓'으로 보여줄게요"
백석광(33·사진)은 무용수 출신 배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무용을 시작한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인재’였다. 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외국 대신 ‘새로운 장르’로 유학을 떠났다. 한예종 무용원을 자퇴하고 연극원 연출과에 새로 입학한 것. 이후 이윤택 연출의 ‘혜경궁 홍씨’(2014년) 등 굵직한 작품의 주연을 맡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립극단이 제작해 오는 23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리는 연극 ‘로베르토 쥬코’에서 연쇄 살인마 쥬코 역을 맡은 그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쥬코는 ‘악인이냐, 선인이냐’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햄릿’이나 ‘리어왕’처럼 한번에 와닿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대학 시절 이 작품을 읽었을 땐 인물이 가진 어둠과 강렬함에 매료됐는데, 지금은 그 안에서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어요.”

‘로베르토 쥬코’는 프랑스 극작가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1948~1989)가 이탈리아의 연쇄 살인범 로베르토 쥬코를 모티브로 쓴 대표작이다. 쥬코는 19세이던 1981년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정신병동 감옥에 수감됐다가 탈옥해 프랑스와 스위스 등지에서 사람들을 납치, 살해해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콜테스는 단지 살인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사회의 타락과 모순, 가족관계의 파탄, 소통의 부재 등을 고발한다.

“쥬코라는 ‘바이러스’는 한 사회의 인식 틀을 마구 흔들어 놓습니다. ‘사랑은 소중한 것인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늘 고정적인가’ 등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성의 가치관을 의심하게 하죠. 쥬코를 만나면서 저 역시 제 삶의 많은 것을 의심하게 됐어요.”

에이즈로 마흔한 살에 요절한 작가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신의 모습을 쥬코에게 투영했다. 백석광은 무용수로서의 장점을 살려 다중인격을 지닌 쥬코의 이미지를 ‘몸짓’으로 표현해낼 예정이다. 과격한 인격을 표현할 땐 좀 더 극적으로, 어린 인격을 표현할 땐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몸짓을 한다. 그는 “다양한 이미지를 나타내는 ‘몸짓’을 통해 관객들에게 쥬코의 캐릭터를 각인시키고 싶다”고 설명했다.

백석광은 이윤택 연출의 ‘혜경궁 홍씨’에서 사도세자 역을 통해 연극계에 존재감을 알렸다. ‘문제적 인간 연산’에선 광기와 분노, 결핍을 극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두 작품을 통해 이윤택 선생님의 연극성을 수혈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리꾼 이자람과 8년째 연인으로 사귀고 있다. 둘 다 ‘워커홀릭’이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지만 예술로 함께 소통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한국 무용수에서 영화연출가로, 연극배우로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그의 다음 목표는 뭘까. 그는 “지금까지의 여러 시도는 결국 ‘연극’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오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며 “그동안 사도세자, 연산군, 연쇄살인범처럼 센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다음에는 바보나 호색한처럼 ‘삼류’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