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유럽에서 번 돈을 놓고 유럽연합(EU)과 미국이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EU는 애플이 불법거래를 통해 세금을 회피했다며 수십억유로를 부과할 계획이다. 반면 미국은 EU가 초국가적인 과세당국이 돼가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미국 내 유럽 기업에 대한 보복조치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EU 외교전으로 번진 '190억유로 애플세'
◆EU, 다음달 세무조사 결과 발표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유럽위원회(EC)가 2013년 중반부터 3년여간 이뤄진 애플 세무조사 결과를 오는 9월 발표하고 수십억유로의 세금을 부과할 예정이라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애플이 그동안 EU 회원국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에 대해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EC는 애플이 유럽 내 자회사 간 거래 과정에서 이전가격 조작을 통해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로 수익을 빼돌렸다고 보고 있다. 애플은 유럽 국가 중 법인세율이 12.5%로 가장 낮은 아일랜드로 수익을 옮겼으며, 세금 회피를 위한 이 같은 거래에 아일랜드 정부가 협조했다는 혐의다.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에 적용한 실효세율은 2%로 법정 법인세율의 6분의 1에도 못 미쳤다. EC는 아일랜드 정부와 애플 간 이면계약을 의심하고 있다.

EU는 애플뿐만 아니라 스타벅스와 아마존 등 다른 미국 기업 대상으로도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스타벅스 유럽본부가 있는 네덜란드 정부에 2000만~3000만유로 세금을 환수하라고 요청했다. 룩셈부르크에는 피아트크라이슬러에 비슷한 액수의 세금을 부과하고, 아마존에 대한 세무조사를 요구했다.

애플은 세금부과 액수가 다른 미국 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EU와 미국 간 외교마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JP모간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애플에 부과될 세금이 최대 190억유로(약 2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美 “EU는 초국가적 과세당국”

미국은 이날 발표한 이전가격 관련 백서에서 “EC가 초국가적 과세당국이 되려 한다”고 비난했다. “EC 조사가 세제개혁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조사를 지속하면 미국 재무부도 적절한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올초 미국 상원은 EC가 애플에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을 매기면 미국 내 유럽 기업에도 이중과세를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에게 요구했다.

이날 백서에는 애플은 물론 스타벅스와 아마존 등 EC 조사대상 미국 기업이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루 재무장관은 이전에도 EC 조사가 “미국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며 형평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EC 대변인은 미국의 반발에 “미 기업만을 대상으로 집중 조사하는 것은 아니다”며 “유럽에서 영업하는 모든 기업이 대상”이라고 말했다.

애플 측은 “유럽 각국의 세제를 충실히 따랐고 어떤 불법행위도 하지 않았다”며 “EC가 과세방침을 발표하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 번 수익금을 미국으로 가져올 계획도 없다고 강조했다. 24일 취임 5주년을 맞은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해외 수익금을 본국으로 가져오면 4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며 미국 정부의 세제를 비판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대기업이 해외에 쌓아둔 수익금은 2조4000억달러에 이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 수익금을 본국으로 환입하면 14% 세율을 적용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미 하원은 이보다 훨씬 낮은 8.75%를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10% 세율을 제안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