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ECC. / 한경 DB
이화여대 ECC.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이화여대 학생들이 닷새째 본관 점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30일엔 학내에 경찰 병력이 투입돼 본관에 있던 교직원을 빼내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점거 농성을 풀지 않고 있다. 농성 참여 학생 수는 오히려 늘었다.

학교 측은 이례적으로 자교 학생들을 수위 높게 비판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화여대가 낸 ‘본관 점거 및 불법 감금 사태’와 ‘학내 경찰 진입’에 관한 2건의 공식 자료에서 눈에 띄는 키워드는 ‘불법 감금’ ‘범법 행위’ ‘인격 모욕’ ‘비이성적 집단행동’ 등이다. (☞ 관련 기사: 이화여대 입장 "비상식적 점거·감금…외부세력 의해 변질")

지난달 28일 이화여대 본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학평의원회를 학생들이 막으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날 회의는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단과대학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관련 학칙개정안을 심의하는 자리였다. 이를 반대해온 학생들은 학칙이 개정되면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을 막기 어렵다고 판단,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이후 수일간 평의원인 교수와 직원들이 학생들에 의해 감금 상태에 놓였다는 게 학교 측 주장이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화장실도 점거 학생들 허락을 받고 가야 하는 등 사실상 감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악화돼 (경찰에) 구조 요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생들 주장은 다르다.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반대하는 학생들 의견을 전달하면서 총학생회에 고지 후 평의회를 개최해달라고 했지만 학교 측이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 실질적인 학생 의견 반영 통로가 막혀 있어 회의를 막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양측 의견 대립은 학내 경찰 투입 사태까지 불렀다. 학생 연행은 없었으며 어지럼증·탈수 증세 등을 호소한 교직원을 구조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학내 문제에 물리적 공권력을 동원하는 사태까지 이른 것은 심각한 ‘불통’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강력한 표현을 써가며 점거 농성 학생들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보면 학교 측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학생과 학교가 대립각을 세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이 대학 캠퍼스엔 카페, 기념품 가게, 야외 휴게공간으로 구성된 ‘이화 파빌리온’이 문을 열었다. 학생들이 상업성 논란을 제기하며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 추진이 문제가 됐다. 학생들 의사와 무관하게 학과 정원 등이 조정된다는 이유로 반대가 거셌으나 학교 측 의지가 관철됐다.

이처럼 불신이 쌓인 상황에서 또 한 번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을 밀어붙이자 학생들 불만이 폭발한 셈이다.

학교 측은 나름의 청사진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는 별개 영역이다. 논쟁을 통해 결론 내리면 된다. 핵심은 학생 의견 수렴 절차다. 학교는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또 그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감금, 외부 세력, 집단행동 따위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있다면 엄중하게 다뤄야 하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스승을 감금한다”고 표현하거나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는 식으로 공식 자료를 내는 것은 좀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자칫 고려대 출교 사태나 작년 민주노총 시위와 유사한 프레임이 형성될 수 있어서다.

물론 학교 입장에선 일부 오해가 억울할 수 있다. 학교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총장이 학생들을 피하는 게 아니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만나자고 학생들에게 제안했다”면서 “하지만 점거 학생들은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총장이 안 만나준다’는 식으로 얘기가 나온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다시 시도해야 한다. 총장과의 만남을 제안하고 거기에 성실히 임해 학생들을 설득해야 하는 사안이다. 다소 껄끄럽고 시간이 걸린다 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

10여년 전 일이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며 삭발했다는 기사를 썼다. 당시 총장이 직접 연락해와선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그만큼 학생 여론에 신경을 썼다. 지금이 그럴 때다. 지엽적 문제에 감정 소모하기보다는 직접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승적으로 학교가 먼저 손 내밀기를 바란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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