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한국산 제품이 각국 무역제한 조치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한국산 제품에 각국이 무역제한 조치를 취한 건수는 180여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가능성,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주한미군 배치에 따른 중국의 무역보복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한국을 타깃으로 하는 무역장벽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거세지는 신보호무역주의] 184개 무역규제에 겹겹이 포위…'보호무역 표적'된 한국
美, 철강에 무더기 덤핑 판정

2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각국의 무역제한 조치는 지난 6월 말 기준 184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달에는 159건의 규제를 적용받았는데 1년 사이에 16% 증가했다. 이 중 반덤핑 규제가 125건으로 가장 많고,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가 52건, 상계관세 적용이 7건이었다. 한국 상품에 가장 많은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인도로 32건이었다. 미국(22건) 중국(11건)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미국은 한국산 철강·금속 제품에 19건의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계관세 결정 7건도 모두 미국이 내린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이달 들어 국내 양대 철강업체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에 각각 58.4%, 3.9%의 상계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앞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제품(도금판재류)에 최대 4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중국과 한국 철강제품 때문에 미국 철강산업과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미국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신보호무역주의도 철강 노동자의 표를 겨냥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中, 무역보복 움직임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사드 주한미군 배치 결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의 대(對)한국 비관세장벽이 2008년 이후 위생 및 검역 부문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사드 배치로 중국의 무역보복 조치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위생 등을 문제 삼아 한국산 제품의 통관을 거부한 건수는 2000~2008년 249건에서 2009~2015년 887건으로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만의 인증제도 등을 내세워 수입을 제한한 경우도 같은 기간 507건에서 681건으로 늘었다.

가뜩이나 중국의 비관세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가 무역보복의 원인을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 관영매체들은 한국산 화장품 등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CCTV가 26일 한국산 밀수 화장품이 피부에 유해할 수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고, 신화망 등도 한국산 화장품에 중국 정부가 사용을 금지한 물질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적극적인 통상 외교 필요”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미국 대선에서 제기된 한·미 FTA 재협상론에 대해 “표를 의식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측면이 있다”면서도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선거운동 때 한 얘기를 완전히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한·미 FTA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앞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통상 압력을 가할 것을 정부가 각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등의 움직임에 중국 인도 등이 발끈해 빗장을 걸어 잠그면 보호무역주의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라며 “한국 일본 호주 등 중간자 입장에 있는 나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태훈/이승우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