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향 '그분 오신 날'…9홀 9언더파 깜짝샷
“59타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랬으면 아마 오버파를 쳤을 걸요, 하하.”

‘작은 거인’ 이미향(23·KB금융그룹·사진)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17일(현지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JTBC파운더스컵 대회에서 코스 레코드이자 LPGA 9홀 최소타 타이 기록을 세운 직후 인터뷰에서였다.

이미향이 이 기록을 세우기 하루 전인 16일은 아니카 소렌스탐(46·스웨덴)이 ‘전설의 59타’를 친 지 꼭 15년 되는 날이었다. 2001년 3월16일 애리조나 피닉스의 스탠더드레지스터핑 대회에서 작성한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꿈의 타수’로 남아 있다. 전반에만 9언더파를 친 이미향이 후반에 4타만 더 줄였으면 ‘전설’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미향은 “이번엔 생각지 못했지만 다음번엔 59타를 꼭 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글, 버디, 버디…신들린 샷

이미향은 ‘골프 머신’처럼 버디를 쓸어 모았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GC(파72·6538야드)를 찾은 갤러리들은 그의 ‘신들린 샷’이 이어지자 홀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10번홀에서 출발한 그는 첫홀 버디를 뽑아낸 뒤 두 번째 홀(파5)에서 이글을 기록하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세 번째 홀에서 파로 잠시 숨을 고른 이미향은 곧 13번홀부터 18번홀까지 6개홀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버디쇼를 펼쳤다. 9개홀에서 9타를 줄인 것이다. 9홀 27타는 LPGA 타이 기록. 양희영(27·PNS), 폴라 크리머(미국), 김인경(28·한화), 강지민(36) 등이 이 기록을 갖고 있다.

이미향은 작은 키(162㎝)에도 올해 평균 263.25야드의 드라이버샷을 날려 LPGA투어 30위에 올라 있는 ‘짱짱한 장타자’다. 이날은 드라이버 비거리를 254야드 정도로 줄인 대신 페어웨이를 정교하게 공략하는 데 집중했다. 14번의 드라이버샷을 모두 페어웨이에 올렸다. 정확도 100%. 덕분에 아이언샷 대부분이 홀컵 주변 그린 2~5m 안쪽에 떨어졌다. 퍼팅이 그만큼 쉬워졌다.

갤러리와 팬들은 그가 후반에 59타 기록을 깨주길 기대했지만 버디는 1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버디는 그를 단독 선두에 올려놓았다. 10언더파 62타. 김세영(24·미래에셋)과 브리트니 랭(미국) 등 2위 그룹에 한 타 앞선 성적이다. 2012년 LPGA 2부 투어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한 이미향은 2014년 일본에서 열린 LPGA투어 미즈노클래식에서 첫승을 올렸다.

◆김세영 “나도 감 잡았어”

이날 주인공은 김세영이 될 수도 있었다. 김세영은 1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9개를 잡아내 9언더파 63타를 쳤다. 63타는 김세영이 LPGA투어에서 기록한 ‘베스트 스코어’다. 그는 “코스를 어떻게 공략하겠다는 전략 구상 없이 한 타 한 타 주어진 상황 해결에만 집중했는데 의외로 결과가 좋았다”며 “최근까지 꼬였던 스윙이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LPGA 신인상을 받은 그는 시즌 첫 대회인 퓨어실크바하마와 코츠골프챔피언십을 공동 2위, 공동 3위로 장식하며 상쾌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이어진 두 대회에서 중위권으로 처지면서 샷의 리듬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LPGA에 첫발을 들여놓은 박성현(23·넵스)도 순항했다.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골라내며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장기인 드라이버(평균 295야드)로 짧게 세팅된 코스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버디를 쉽게 낚았다. ‘골프 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1오버파 공동 104위로 밀려나 예선 탈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