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게임업계를 마약 소굴로 몰겠다는 복지부
게임업계에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게임산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확인한 것은 지난해 10월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다.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480억원을 들여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돕겠다고 했다.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가만있을 리 없다. 준비 끝에 지난달 19일 ‘융합콘텐츠산업 육성대책’을 내놓았다.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지원책이다. 행사에는 두 부처 장관이 모두 참석해 지원 의지를 다졌다. 게임업계로선 가뭄에 단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1주일도 채 안 된 지난달 25일이다.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올라온 ‘정신건강종합대책’이라는 보건복지부 안건에 희한한 내용이 거론됐다.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 등과 함께 중독의 하나로 규정하고 연내 게임중독을 ‘질병코드’로 분류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질병코드가 무엇인가. 질병 이환(罹患) 및 사망 자료를 유사성에 따라 체계적으로 유형화한 것이다. 복지부는 이 표준체계에 맞춰 질병을 관리하고 관련 제도를 만든다. 한마디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복지부가 예방 연구 치료 교육 등 모든 과정에 적극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게임에 중독이라는 개념을 들이대 질병으로 구분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의학으로 검증되지도 않았다. 게임중독에 대한 정의도 없다. 근거가 없는데 질병으로 묶겠다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난리통이다. 게임을 마약 따위로 치부한다니 말이다. 사용자들이 게임에 과다하게 몰입하는 원인을 조사하고 상담이나 지도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라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다짜고짜 중독자를 양산하고, 주홍글씨를 새기겠다는 복지부다.

미래부와 문체부도 발끈하긴 마찬가지다. 청년 창업과 일자리 창출의 첨병으로 육성해야 할 산업을 마약꾼 소굴로 전락시키겠다니 말이다. 같은 정부가 이 모양이다. 게임을 마약으로 여기겠다는 각 부처의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강제 셧다운제’를, 교육부는 ‘쿨링오프제’를 성사시켜 발을 걸쳤다. 문체부도 게임시간 선택제와 웹보드 규제로 수저를 얹었다.

복지부는 아예 입법이라는 수단을 꺼내 들었다. 국회의원들과 배짱도 맞았다. 국회에 발의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이다.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중독 질병으로 묶겠다는 소위 ‘4대 중독법’이다. 입법에 성공하면 복지부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라는 조직을 신설해 정부 내 모든 중독 관련 업무를 한 손에 쥐게 된다.

복지부 보고서에는 인터넷 중독자가 68만명이며 연간 5조4000억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들어간다고 돼 있다. 업무의 범위가 간단치 않다. 반갑긴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한 정신과 의사는 공청회에서 마약을 중독법에서 뺄지언정 게임중독은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하긴 이 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도 정신과 의사다. 이들이 속한 한국중독정신의학회는 중독법 입법을 ‘숙원사업’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법안이 파행을 거듭한 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폐기될 처지에 놓여서다. 복지부가 질병코드라는 카드를 꺼내 든 이유다.

복지부는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고 발을 뺀다. 연구용역을 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 하러 용역을 줬는가.

10년 전만 해도 세계를 호령하던 한국 게임산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게임업체 수가 5년 새 30% 감소했다. 종사자 수도 1만명 가까이 줄었다. 게임산업을 키워 청년 창업과 일자리 창출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얘기는 공염불이었던 셈이다.

13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세계 게임산업이다. 텐센트, 마이크로소프트, EA, 소니 같은 회사가 중독법에 시달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손발이 묶인 것은 한국 기업뿐이다.

게임산업만이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게 게임이 된다는 세상이다. 각광받는 가상현실(VR)이나 홀로그램도 게임이 기반이다. 소위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게임화)이다. 그런데 한국은 게임을 마약 취급한다. 어떻게 인재를 모으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것인가. 답답한 노릇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