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사 한 획 그은 27개 주요 장면, 고전 인용문 통해 실감나게 엿보기
영국은 지금의 입헌군주체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왕정과 공화정을 오가며 격변을 겪었다. 무엇이 시발점이었을까. 17세기 초 영국 왕 제임스 1세(1566~1625)의 말을 기록한 문헌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하원은 머리 없는 몸뚱이다. 의원들은 난잡스럽게 의견을 개진한다. 내 선조들이 이를 허락했다는 것이 놀랍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왕위를 잇기 위해 온 영국에서 의회를 처음 접한 제임스 1세는 의회 체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된 국왕과 의회의 갈등이 군주의 권리를 제한한 명예혁명의 계기가 됐다.

《세계사 브런치》는 당대 문헌과 역사 고전을 통해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을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흥망성쇠,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유럽 십자군 운동, 미국 시민혁명 등 세계사의 27개 주요 장면을 골랐다. 역사 고전 45권에서 뽑은 문장 구절을 함께 실어 당시 사람들의 행적과 감정의 궤적을 따라갈 수 있게 했다. 저자는 “쓰인 지 한참 지난 역사책이 지금까지도 읽히는 이유는 그 속에 짜릿한 흥행 요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라며 “고전 인용문을 보면 역사를 좀 더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전은 역사적 사건의 전후 맥락을 파악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1세기 로마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페트로니우스의 풍자 소설 ‘사티리콘’이 그 예다. 화려한 파티 장면 묘사를 보면 당시 로마인들이 지나친 사치와 방종에 젖어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일화는 로마의 쇠퇴와 멸망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여러 고전에서 인용문을 발췌해 각각 다른 사상을 지닌 당시 사람들의 견해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649년 영국 의회파가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한 사건을 두고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혼란을 막기 위해 왕권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반면 존 밀턴은 당시 배포한 소책자에서 “국민이 왕을 몰아낸 것은 정당한 자기방어”라고 주장했다.

고전을 인용한 부분에 영문 텍스트를 함께 적고 이를 기준으로 설명을 전개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동양의 고전과 시대상을 설명할 때도 한문보다 영어를 먼저 써 부연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저자는 “영어는 우리 시대의 세계 공용어”라며 “전 세계의 모든 중요한 지적 논의는 영어로 이뤄지고 있으며 인문학도 예외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책을 추천한 김은옥 교보문고 인문분야 북마스터는 “우리와 다른 시공간에서 삶을 영위한 사람들의 행적과 대화, 감정을 적은 기록들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