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타워 현장 간 신동빈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은 3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해 롯데호텔에서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을 만난 뒤 곧바로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공사현장을 방문했다. 신 회장 오른쪽은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롯데그룹 제공
< 롯데타워 현장 간 신동빈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은 3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해 롯데호텔에서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을 만난 뒤 곧바로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공사현장을 방문했다. 신 회장 오른쪽은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롯데그룹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3일 오후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있는 부친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숙소 겸 집무실로 향했다. 만남이 예정돼 있진 않았지만 신 회장은 먼 길을 다녀와 인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신 총괄회장을 찾아갔다. 부자간의 만남은 5분 만에 끝났다. 후계구도와 관련해 깊은 얘기를 나누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는 신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도 있었다. 롯데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한 이후 신 총괄회장과 두 아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후계구도 얘기는 없어

신 회장은 이날 오후 3시25분께 비서, 고위 임원 한 명과 함께 롯데호텔에 있는 신 총괄회장의 방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 있던 신 총괄회장의 비서는 “계열사 대표가 보고 중”이라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5분 정도 지나 신 회장 일행이 들어갔다.

신 회장 일행은 잠시 멈칫했다. 방 안에 신 전 부회장과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다. 신 총괄회장의 셋째 동생으로 신 회장의 숙부인 신 사장은 이번 분쟁에서 신 전 부회장 편에 서 있다.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녀왔습니다.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고 했다. 신 총괄회장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다. 신 회장이 “도쿄에 다녀왔습니다”고 하자 신 총괄회장은 “어허, 어디?”라고 재차 물었고, 신 회장은 “네, 도쿄요”라고 답했다. 신 회장은 다시 한번 “걱정을 끼쳐드려 매우 죄송합니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과 신 사장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고 롯데 관계자는 전했다.

경영권이나 후계 구도에 관한 대화는 오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과 동석한 임원은 “신 전 부회장과 신 사장이 같이 있어 많은 얘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일본 출장에 관해서 간단한 보고만 했다”고 전했다. 신 회장 일행은 5분 만에 나왔다. 그러나 신 사장은 “신 회장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신 총괄회장이 ‘나가라’고 했다”며 롯데 측의 설명과는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도 동석

이날 부자 회동을 놓고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정면돌파를 택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당초 롯데 안팎에선 신 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중국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낸 것과 관련, 지난달 초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크게 꾸짖고 때리기까지 하는 등 부자 관계가 불편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이때를 지난달 8~9일로 기억하고 있다. 이후 신 회장은 한 달 가까이 신 총괄회장을 만나지 못했다. 롯데 측은 이번 분쟁에서 신 전 부회장 측에 선 친인척이 신 총괄회장과 다른 사람들이 만나지 못하도록 차단해 왔다고 전했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아버지와 형에게 화해와 타협을 위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신 전 부회장 측도 신 회장과 아버지의 만남을 막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 지만 후계구도에 관한 얘기가 없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부자 회동 자리에 함께 있었던 참석자는 “신 전 부회장과 신 사장은 신 총괄회장 방에 계속 있었던 것 같다”며 “계열사 대표들이 보고할 때도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이 여전히 신 총괄회장 옆을 지키면서 후계구도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타워 방문 등 현안 챙겨

신 회장은 롯데호텔에서 나와 곧장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107층 현장에서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으로부터 공사 현황을 보고받고 “롯데월드타워는 총괄회장의 창업정신에 따라 롯데가 사명감을 갖고 짓는 곳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현장 근로자들에게 수박도 전달했다.

신 회장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도 방문, 직원들에게 “롯데가 앞장서서 중국 관광객을 불러들여 경제 활성화에 앞장서자”고 말했다. 재계에선 신 총괄회장이 심혈을 기울여온 롯데월드타워 현장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후계 경쟁에서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유승호/김병근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