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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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집중에 대한 인식과 정책에서 한국은 아주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특이하다 함은 경제학 이론이나 다른 나라의 정책과 견줘 볼 때 예외적이라는 뜻이다.

기업집단은 세계 각국서 흔히 나타나는 유형…대기업 옥죄기보다 경쟁자 키우는 정책 필요
경제력집중은 일반집중과 시장집중으로 대별된다. 방송 또는 신문지상에서 ‘5대 기업집단의 매출총액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어섰다’, ‘30대 기업집단의 자산총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0%를 넘어섰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민경제에서 특정 대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음을 문제삼는 것인데 이때의 집중은 엄밀하게 말하면 일반집중을 뜻한다. 반면에 자동차나 커피 등의 개별 시장에서 선도 대기업의 독점력을 문제삼는 것은 시장집중에 관한 이야기다.

위 두 가지 중에 주류 경제학이 주목하는 분야는 시장집중이다. 개별 시장의 독점력은 높은 가격으로 이어져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 또 경쟁이 충분치 않으면 경제 발전에 필요한 혁신과 기업가적 발견이 위축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경제학 이론은 독점에 대해서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적대적인 반면에 일반집중에 대해서는 개별 시장에서의 독점력으로 전이되지 않는 한 굳이 문제삼지 않는 태도를 취해왔다. 경제학의 이런 입장과 더불어 미국 셔먼법의 영향에 따라 한국을 제외하고, 경쟁법을 운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경제력집중을 시장집중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反)독점법의 효시로 알려진 셔먼법은 1890년 제정됐다. 미국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철도회사를 시작으로 대기업 조직이 확산되면서 경제력집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 셔먼법이다. 1911년 셔먼법에 의거해 록펠러가 이끄는 스탠더드오일 회사를 34개의 독립회사로 강제 분할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 특기할 사실은, 한국에서 경제력집중을 막으려면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논리적 뒷받침으로 이 사례를 인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인용이다. 미국에서 경제력집중은 국내에서와 달리 시장집중을 의미한다. 스탠더드오일의 분할 명령도 그 내용을 보면, 동종 사업자들이 트러스트 형태로 석유제품 시장을 독점하고 있음을 문제삼아 경쟁을 회복시킬 목적으로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경제력집중을 기업집단에 의해 야기되는 일반집중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에 의해 지정된 기업집단은 사업 구성과 내부거래, 소유지배구조에 대해 별도의 규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특유의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은 1987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본격화됐다. 햇수로 벌써 30년이다. 그동안 국민 1인당 소득은 9배 이상 증가했고, 미국 유럽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서 보듯이 대내외 경쟁여건은 딴판이 됐으며, 대기업의 주된 활동무대는 국내에서 해외로 이동했다. 이런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특유의 인식과 규제의 틀이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차라리 불가사의(不可思議)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에 대해 반론이 없지는 않다. 한국은 재벌이라는 기업집단이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한 경제력집중을 막으려면 다른 나라에 유례가 없어도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중 하나다. 그러나 기업집단 형태의 조직이 다른 나라에 없다는 예단은 지난 세기의 낡은 지식이다. 기업집단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캐나다 경영학자 랜달 모크조차 기업집단은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며, 미국에서만 예외적으로 관찰되지 않는다고 인정한 지 오래다. 한국 특유의 기업집단 때문에 이들이 야기하는 경제력집중을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에 의해 설 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한국은 압축성장의 부작용으로 인해 경제력집중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고, 계속 심해지기 때문에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논리는 제도학파의 ‘기업패권 가설’과 흡사한 면이 있다. ‘유한계급론’의 저자인 베블런에서 시작해 ‘불확실성의 시대’로 유명한 갤브레이스로 이어지는 제도학파에서는 기업의 권력과 규모는 상호 보강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냥 두면 기존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집중이 계속 심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주변부 학자의 예언은 기우(杞憂)로 판명됐으며, 1980년대 말 소련 및 공산권의 붕괴를 계기로 이들의 주장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주류에서 퇴장한 제도학파 이론이 한국에서는 아직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상위 기업집단의 자산 또는 매출총액을 GDP로 나눈 값이 매년 커지고 있음을 들어 한국의 경제력집중은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30대 기업집단의 GDP 대비 자산총액은 2005년 56%에서 2012년 105%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GDP는 부가가치의 합계이다. 이를 성격이 다른 매출 또는 자산과 비교해 평가하는 것은 의도적이 아니라면 오류다. 경제력집중을 측정하겠다면 분모와 분자에 같은 성격의 변수를 써야 한다. 위의 집중도 계산식에서 분모에 한국은행의 기업자산 통계를 집어넣으면, 자산 집중도는 같은 기간 34.2%에서 35.9%로 약간 높아졌을 뿐이다.

일반집중은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규제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의 칼날을 겨냥해야 할 만큼 한국의 경제력집중이 유난히 높은 것도 아니다. 한국의 경제력집중은 미국과 일본, 독일보다는 높지만 스위스와 대만, 네덜란드 등에 비해서는 낮다. 그리고 미국, 일본, 독일의 집중이 한국보다 낮은 것은 이들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규모나 범위가 한국의 대표기업보다 작아서가 아니다. 경제력집중이 낮은 나라의 공통적 특징은 대표기업이 아니라도 다른 대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종업원이 300명을 넘는 대기업 비중이 이들 나라에서는 0.7~0.8%에 이르지만 한국은 고작 0.1%다. 따라서 굳이 경제력집중을 낮춰야 하겠다고 고집한다면 대기업의 수와 비중을 선진국 수준으로 늘리는 분모 확대 정책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기존 대기업을 옥죄어 분자를 억제하겠다는 규제 관행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기업 경제력집중은 심화’
제도학파의 기업패권 가설, 주류 경제학선 밀려나


베블렌
베블렌
자원배분 효율의 측면에서 볼 때 경쟁당국은 개별 시장의 독과점(시장집중) 문제에 주된 관심을 둬야 한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일반집중을 규제해야 한다는 이론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게 베블런에서 시작해 코먼스, 갤브레이스를 거쳐 뇌들러 등으로 맥을 잇는 제도학파의 ‘기업패권 가설’이다. 이 가설은 기업의 권력과 규모는 상호 보강 관계에 있기 때문에 경제력집중은 기존 대기업을 중심으로 필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제도학파는 생산과 배분이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제학 이론과 달리 사실은 대기업의 힘과 강제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갤브레이스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대기업이 시장의 가격에 반응하는 꼭두각시이고 소비자에게 봉사한다는 주장은 허구이며, 기업의 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한 책략’이라고 폄하한 것도 기업패권 가설에 따른 것이다.

벌리와 민스도 이 가설에 영향을 받은 듯 지금도 널리 인용되는 ‘현대기업과 사유재산’(1932)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경제력집중이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200대 기업의 자산 비중이 1909~1929년 빠르게 증가한 추세에 비춰 볼 때 이들의 자산 비중은 1950년에는 70%, 1972년에는 100%에 이를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500대 기업으로 범위를 넓혀 봐도 이들의 자산 비중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복합기업화 열풍이 일던 1960년대에도 63%에서 65%로 약간 증가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 비중은 1984년에 54%로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경제력집중은 필연적으로 높아진다는 제도학파의 기업패권 가설은 이론과 실증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여기에서도 한국은 예외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을 유지하기 위한 논리로 기업패권 가설이 적극 활용되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황인학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