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라진 그리스 >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오는 5일)를 앞두고 그리스 아테네에선 찬성과 반대시위가 잇따라 열렸다. 채권단 제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2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리스어로 ‘아니오’를 뜻하는 ‘OXI’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왼쪽 사진)한 데 이어 30일에는 ‘예’를 뜻하는 ‘NAI’가 적힌 현수막을 든 시민들이 찬성집회를 열었다. 아테네AFP연합뉴스
< 갈라진 그리스 >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오는 5일)를 앞두고 그리스 아테네에선 찬성과 반대시위가 잇따라 열렸다. 채권단 제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29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그리스어로 ‘아니오’를 뜻하는 ‘OXI’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왼쪽 사진)한 데 이어 30일에는 ‘예’를 뜻하는 ‘NAI’가 적힌 현수막을 든 시민들이 찬성집회를 열었다. 아테네AFP연합뉴스
그리스는 30일(현지시간)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빌린 돈 15억유로(약 1조9000억원)를 갚지 못해 IMF 71년 역사상 처음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낸 선진국이 됐다. 지금까지 IMF에 돈을 못 갚은 나라는 소말리아와 수단, 짐바브웨 등 가난한 나라뿐이었다. 디폴트 금액도 역대 최대다. IMF는 채권단과 그리스 간 한 가닥 협상의 끈이 남아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해 디폴트 대신 ‘연체 상태(arrears)’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국가부도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막판 느닷없이 2년치 부채 상환금에 해당하는 291억유로를 지원해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결국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의 제안을 조건부로 수용할 의사를 밝혔다. ‘벼랑 끝 전술’을 펴면 채권단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것이라 생각했던 치프라스 총리가 수세에 몰리면서 퇴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와 무원칙한 구제금융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리스, 채권단 제안 조건부 수용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그리스 정부는 1일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의 제안을 조건부로 수용할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그리스 정부가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오는 5일 예정된 국민투표가 철회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협상은 국민투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밝힌 상황이라 그리스 입장에서는 국민투표를 철회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긴급 연설에서 “국민투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관련 찬반투표가 아니다”며 “국민투표를 예정대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그리스 국민은 ‘네(NAI·예)’와 ‘오히(OXI·아니오)’로 분열된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8~30일 진행된 설문에서 그리스인의 54%가 반대, 33%가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고 현지언론을 인용, 1일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시행된 다른 설문조사에선 찬성이 47.2%, 반대가 33.0%였다. 여론조사마다 예측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메르켈에 대한 치프라스의 반란은 실패”

메르켈 독일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
혼란에 빠진 그리스와 달리 국제금융시장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1일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코스피지수는 1.14%,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0.46% 상승했다. 과열 논란에 시달리는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5.23% 떨어진 채 마감했다. 전날 밤 열린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도 독일 DAX30지수는 1.25% 떨어졌지만 미국 S&P500지수는 0.27% 올라 그리스 사태의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치프라스의 반란이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메르켈 총리의 긴축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는 나라의 지원을 얻어 보다 우호적인 구제금융 협상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막상 협상이 시작되자 이들 나라가 메르켈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메르켈의 가혹한 긴축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던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30일 “메르켈 총리는 해법을 찾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두둔했다.

좌파 출신으로 치프라스에게 호의적이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그리스는 긴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런 가운데 유럽회의는 “그리스 국민투표 공지가 너무 짧은 기한을 두고 이뤄졌다”며 국제 기준에 미달한다고 지적했다.

임근호/김은정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