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4대강 사업 덕분이다
총무부는 일을 잘해도 칭찬 듣기 어렵다. 그러나 욕먹기는 쉽다. 경찰이나 군도 비슷하다. 사회안전 업무나 경계근무는 평소에는 매뉴얼조차 우회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물론 그런 속성 때문에 조직은 느슨해진다. 세월호 같은 큰 사건이 아니라면 적절한 부족상태가 오히려 비용합리적으로 인식된다. 지하철 역들의 심장박동기가 잘 작동하지 않는 것도, 그리고 작동시킬 수 있는 시민이 적은 것도 같은 이유다. 합리적 무관심은 언론의 호들갑이 사라지면서 금세 평시 수준으로 돌아간다. 메르스도 그럴 것이다.

기록적이라는 지금의 가뭄도 그렇다. 기록상으로는 초대형 가뭄 피해가 속출해야 마땅하지만 소양호 바닥이 드러난 사진 정도일 뿐, 국민들은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수돗물이 제한 급수되고, 목욕은 사치로 규정되며, 길거리 물 청소가 금지되는 상황이 되고서야 사람들은 가뭄이 턱까지 차올라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농업용수가 부족해지고 공장들의 생산 차질이 확산되면 그때 물 관리 부실을 질타하며 돌연 언론과 정치가 저승사자처럼 등장한다. 전국 단위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비가 이렇게 적게 내리기는 올해가 세 번째다. 비는 평소의 60%인 153㎜가 내렸다. 평소 같으면 농업용수 공업용수가 이미 제한 공급되고 생활용수도 절수로 진입했을 것이다. 곧 식수에도 문제가 터질 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고맙게도 지연되고 있다.

사람들은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잘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방비용도 활동도 보상받기 어렵다. 가뭄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도 감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타와 비난, 저주가 온 나라를 진동했다.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오늘도 무언가가 제때에 적절하게 공급되고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누군가의 숨은 노력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것은 제도화되어 있거나 누군가의 비용이 투입되었다. 정부가 매일매일 시민들의 필수품을 실어 나르느라고 온통 소동을 벌이지 않는 것은 크고 작은 시장들이 적재적소에서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4대강 사업은 이 극심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이 농업용수, 공업용수, 목욕물, 식수, 그리고 아름답게 흐르는 한강을 여전히 충분히 마시고 즐길 수 있도록 매일 기적을 만들어낸다.

4대강 갈수기의 수위를 평균 1.77m 높여 놓은 것이 거대한 저수지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강이 0.66m, 낙동강 3.14m, 금강 1.14m, 영산강이 2.14m나 높아졌다. 수자원공사는 그렇게 전국적으로 7억2000만의 물을 더 가두어 놓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1차원의 계산이다. 4대강 공사로 높아진 것은 강의 수위만이 아니다. 강 주변의 넓은 들판 아래를 흐르는 지하수위도 그만큼 올려놓은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4대강에서 한참 떨어진 지역에서조차 지하수가 마르지 않고 있다. 바로 이것이 가뭄을 견디게 하고 있다.

식수 부족까지 나아가면 그제서야 4대강 둑을 좀 더 높게 쌓고, 보를 좀 더 많이 만들고, 하상을 좀 더 깊이 파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만일 박원순 시장의 말처럼 한강 잠실보를 철거했거나 일부 과격집단의 주장처럼 4대강을 포기했더라면 지금 4대강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국민들은 대재난에 직면해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론들은 극도의 호들갑이었을 것이다. 아니 바로 지금 그런 일이 꼭 4대강의 효과만큼 지연된 상태로 착착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말이 없다. 하기야 그들은 언제나 말이 없었다. 고속도로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4대강까지, 그 어떤 사업에 대해서도 호들갑을 떨며 반대하던 그들은 성공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침묵해 왔다. 지금도 댐건설에서 송전선에서 원전에서 해군기지에서 반대와 저주를 외치고 있다. 그들은 ‘비용 합리적’ 비용을 높이는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 훼방만 되풀이해왔다. 문제를 포착하고 그것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사회의 조건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