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긴팔원숭이는 신비로운 시적 존재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 ‘정글북’ 속 모글리를 꿈꾸던 한 야생 영장류 학자가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밀림에서의 생활은 말 그대로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는 ‘폭우 속에서 두 발로 비탈진 진흙탕 길을 달리고 나무 위를 껑충껑충 넘어 달리는’ 긴팔원숭이를 수개월간 쫓아다닌 끝에 세 그룹의 긴팔원숭이 무리에게 관찰 연구에 대한 암묵적인 허락을 얻어냈다.

《비숲》은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국립공원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해 국내 최초로 야생 영장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산하 박사가 풀어낸 밀림 모험기다. 저자가 ‘비숲’이라 부른 밀림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며 깨달은 것을 글과 그림, 사진으로 담았다.

저자는 긴팔원숭이를 쫓으며 그들의 특징과 성장과정, 영장류식 교육법 등을 연구했다. 습한 공기 속에서 흰개미 떼와 전쟁을 치르기도 하고, 컴퓨터와 휴대폰 없이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곳에서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2년여 동안 저자는 현지 연구보조원, 지역 주민, 긴팔원숭이 등과 나이와 민족, 종을 초월한 우정을 쌓는다.

과학도서처럼 보이지만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사색을 담은 에세이로 읽힌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사례를 인용하며 이렇게 적었다. “나에겐 긴팔원숭이가 그렇다. 비숲의 높고 신비로운 생명 세계를 가장 훌륭하게 함축하고 체화하는 긴팔원숭이가 나에겐 가장 진정한 생태적 시적(詩的) 존재였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