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절벽’ 눈앞…결혼 등 떠미는 정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인구 절벽’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저출산 문제로 궁지에 몰린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통계청이 2월 26일 발표한 ‘2014년 출생·사망 통계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43만5300명으로 전년(43만6500명)보다 1200명(0.3%) 감소했다. 197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2005년(43만5000명)에 이어 둘째로 적은 수치다. 합계 출산율(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지난해 1.21명으로 전년(1.19명)보다 0.02명 늘었지만 여전히 ‘초저출산’의 기준선인 1.30명에 못 미친다. 합계 출산율 1.21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 같은 저출산 추세로 한국은 2017년부터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2018년에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14%를 돌파해 고령사회로 들어설 전망이다. 또 2020년에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해 노인 세대로 진입하며 2020년 이후 본격적인 ‘인구 절벽’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히든카드’를 꺼냈다. 바로 ‘만혼(晩婚) 대책’이다. 초혼 연령을 낮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벌써 10년이다. 그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며 체면을 구겼던 정부가 이번에는 대통령까지 나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만혼 대책의 실체와 실효성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히든카드 ‘만혼 대책’ 무엇이 담겼나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은 한국의 인구 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입니다.”

2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위기의식을 불어넣었다. 생산가능인구가 본격적으로 줄어드는 이른바 ‘인구 절벽’이 시작되기까지 5년이 남았다며 남은 시간 동안 범정부적 차원에서 모든 정책 역량을 투입하길 주문한 것이다.

정부는 이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의 윤곽을 제시했다. 그동안 1·2차의 백화점식, 현상 위주의 대응에서 벗어나 3차에서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 아래 추진해 나가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만혼 추세가 저출산과 직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정부는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가 과도한 비용이 들어가는 혼례 문화와 높은 주거비 부담, 낮은 고용률에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해 ‘결혼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동안 저출산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치부됐던 청년 일자리 구제를 핵심 정책으로 끌어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청년 일자리 구제를 통해 결혼율을 올리는 게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상당한 효과가 기대된다. 일자리가 있어야 결혼도 하고 미래 계획도 세울 수 있다. 취업이 안 되거나 취업하더라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상황에서 결혼은 ‘사치’일 뿐이다. 조기 취업 및 장기근속을 지원하고 능력 중심 채용 문화를 확산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면 그들이 다시 결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이번 대책에서 또 한 가지 중점을 둔 부분은 ‘맞벌이 출산율 제고’다. 이는 이미 검토돼 온 정책이지만 그동안 맞벌이 부부가 충분히 체감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던 만큼 기존 제도를 대상의 수요에 맞게 제대로 다듬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과 가정의 균형,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 감소, 양성 평등적 가족 문화 조성 등을 통해 맞벌이 가구의 출산율을 높일 계획이다.

또한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난임 부부와 고위험 산모 등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해 의료비 부담 없이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며 유기·방임 등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국가 보호를 강화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차와 2차 기본 계획 때는 결혼하기 좋은 여건을 지원하는 방법이 주거 지원 정도에만 머물렀다면 이번 3차에서는 청년 일자리 구제와 맞벌이 출산율 제고 등을 핵심 과제로 선정해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게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 밖에 정부는 전세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주택 자금 지원 방식을 다양화하는 등 신혼부부의 주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도 계속할 방침이다. 또한 고비용 혼례 문화도 개선할 계획이다.

이 같은 만혼 대책을 통해 2020년에는 합계 출산율을 1.4명까지 늘리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우려의 시선도… “이번엔 다르다”

하지만 만혼 대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일단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됐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사회구조적 문제까지 건드리는 포괄적인 정책인 가운데 각각의 담당 부처들이 협업이 되지 않아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3년 1월 제3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이후 전체 회의를 한 번도 개최하지 못하고 2년 임기를 마친 바 있다(제4기 위원회는 이번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새롭게 구성). 당초 지난해 전체 회의를 열 계획이었지만 세월호 참사로 무기한 연기됐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위원회로 출범한 위원회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장관위원회로 격하된 것도 컨트롤타워 부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여러 부처가 연결돼 있는 정책을 (복지부)장관 혼자서 컨트롤하려다 보니 적지 않은 어려움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 한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위원회로 위원회의 소속이 다시 격상됐고 기본 계획 방침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린 만큼 컨트롤타워 역할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만혼 대책에 포함된 대다수 정책들이 이미 관련 부처에서 추진 중인 정책들과 대동소이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혼’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면서도 세부 내용은 특별할 게 없다 보니 예산만 쏟아붓고 성과가 없던 기존의 실패한 정책들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실 10년간 270개의 대책들이 쏟아져 나온 가운데 이미 나올 건 다 나온 상태”라면서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관건이며 3차에서 그 방향을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7월쯤 공청회를 진행해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9월까지 기본 계획을 확정하면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5년의 마지막 골든타임. 박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만혼 대책이 과연 ‘인구 절벽’을 막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병화 기자 hkforc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05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