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M&D 시대] 구글은 무인車…삼성은 IoT…히타치는 철도…M&A로 신사업 개척
글로벌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은 사업 시너지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추진돼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래 수익사업을 발굴하는 데 무게를 두고 매물을 찾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가 루프페이를 인수한 것이나 구글이 소프트카드를 인수한 것도 모바일 결제 사업에 뛰어들기 위한 포석이다. 산업 환경이 급변하자 자체 연구개발(R&D)만으로 신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2010년까지 스마트폰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블랙베리가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쇠락의 길을 걸은 것처럼 사물인터넷(IoT), 친환경차 등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응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핵심 역량을 지닌 회사를 인수하면 관련 기술과 핵심 인력을 한꺼번에 확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수 대상 기업의 수익 능력을 따져 값(기업가치)을 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사업 기회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이 늘고 있다. 글로벌 M&A 시장이 커지는 이유다.

◆M&A 통해 미래 수익사업 선점

삼성전자는 작년 하반기 이후 해외에서 7개 기업을 사들였다. 지분 투자한 것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대부분 유통 및 서비스(콰이어트사이드, 심프레스), 의료(얼리센스) 등 현재 주력사업과는 관계가 적지만 삼성의 미래 비전과 일치하는 분야의 기업들이었다. 삼성은 현재 60조원 정도의 현금을 들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는 더 빠르다. 애플과 구글은 각각 1780억달러(약 195조원), 640억달러(약 70조원)라는 막강한 보유 현금을 활용해 세계 비즈니스 생태계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 최근 두 회사가 잇따라 무인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구글이 스카이박스(위성), 비전팩토리(인공지능) 등을 인수한 것은 무인차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의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히타치는 M&A를 통해 기업 체질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킨 사례로 꼽힌다. TV 등 기존 가전사업이 삼성 등에 밀리자 2012년 ‘사회 이노베이션’이라는 새로운 기업 비전을 내걸고 인프라 쪽 기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지난달에는 이탈리아 철도기업 핀메차니카 인수에 2500억엔(약 2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지난해 히타치의 주력사업이었던 가전 매출 비중은 10% 이하로 떨어졌다.

◆국내 대기업도 M&A 적극 나서야

M&A가 미래 수익사업을 찾는 수단으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들도 M&A 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 역량 강화를 통한 사업 확장에만 익숙해져 있는 기업들이 여전히 M&A에 대해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자, 철강, 조선 등 그간 한국 경제를 이끌던 주력사업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어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 절실하다”며 “특히 한국 기업은 미국, 일본 등에 비해 원천기술이 부족해 기존 사업을 확대하기보다는 M&A를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에 빠졌던 미국 경제가 최근 회복되면서 그간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던 기업들이 M&A에 나서는 등 기업 간 ‘대경쟁 시대’가 시작될 수 있다”며 “국내 기업도 경쟁력 있는 기술 회사를 적극 사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윤선 기자/워싱턴=장진모 특파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