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난민효과 vs 슘페터효과
실업과 창업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가. 높은 실업은 기업가(창업가) 정신을 자극한다는 이른바 ‘난민효과(refugee effect)’가 맞을까, 아니면 높은 기업가 정신이 실업을 떨어뜨린다는 ‘슘페터효과(Schumpeter effect)’가 작동하는 것일까.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취업난 속 신설법인 증가

지난 1월 신설법인 수가 8070개로 1월 통계치로는 역대 최대라고 한다. 중소기업청은 “정부의 창업 지원 등으로 창업이 용이한 환경이 마련되면서 신설법인이 증가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경기가 나쁘다 보니 자본금 1억원 미만의 소규모 신설법인 수가 늘어났다”는 쪽에 일단 무게중심을 두는 분위기다.

사실 경기침체로 인한 심각한 취업난을 생각하면 ‘난민효과’를 의심해 볼만한 대목도 적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1월 고용동향조사만 봐도 그렇다. 취업자 증가폭이 7개월 만에 다시 30만명대로 추락했다. 이른바 구직단념자도 49만2000명으로 통계청 조사 이래 최다였다. 잠재구직자를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11.9%로 이 역시 지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한동안 8% 전후이던 청년실업률(15~29세)도 9%대(9.2%)로 올라섰다. 선진국 기준(15~24세)으로는 이미 11.5%에 달했다는 분석이다.

실업이 창업을 자극한다는 가설은 실업의 증가가 창업의 기회비용을 떨어뜨려 창업 활동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어차피 마땅히 취업할 곳도 없다면 창업이라도 해 보자는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창업이 과연 얼마나 가겠나. 신설법인 수 증가가 실업률을 낮추는 ‘슘페터효과’로 이어진다면 백번 환영할 일이지만 현실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는 게 문제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출신의 창업 성공률이 높다는 분석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30년 사이 창업과 상장에 성공한 548명의 창업자 중 범(汎)4대그룹 출신이 3명 중 1명꼴이었다. 범삼성 계열사 출신이 89명(16.2%), 범LG 53명(9.7%), 범현대 27명(4.9%), SK 7명(1.3%) 등의 순이다. 대기업 재직자라면 창업의 기회비용도 높다고 봐야 한다. 무엇이 그런 기회비용을 감수하게 한 건가. 인적자본의 질, 기업가적 재능, 그리고 대기업에서 쌓은 노하우, 네트워크 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소기업 재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로는 한국형 창업의 한 모델일지도 모른다. 과거 한국에서의 벤처 붐도 기존 기업에서 벤처로의 인력 이동이 큰 원동력이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창업도 질이 문제다

지금 대졸 취업문이 갈수록 바늘구멍이라며 아우성이다. 그렇다고 창업이 무슨 실업의 유일한 해결책인 양 이들을 무작정 사지로 내몰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 재직 경험도 없는 대학생은 특히 준비된 창업이 아니면 대거 실업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미국처럼 명문대 우수인재가 창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 한다. ‘슘페터효과’에 대한 강한 기대감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우수인재일수록 창업의 기회비용도 그만큼 높다. 그런 비용을 감수할 만한 강한 유인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과연 그런 유인이 있는가. 창업에도 질이 있다. 단순히 신설법인 수가 증가했다고 창조경제 성과 운운한다면 낯간지러운 얘기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