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5%에 그쳐 3개월째 0%대에 머물렀다.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사상 첫 마이너스(-0.06%)라고 한다. 서민들로선 반길 일이지만 물가하락이 지속되면 실업 증가, 소득감소, 물가 추가하락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또 현금선호가 강해져 소비·투자 부진, 자산시장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더해진다. 그 결과 경제주체들이 미래 기대가 사라져 무기력증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서 목격한 그대로다.

급기야 부총리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최경환 부총리는 어제 강연에서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문제는 디플레에서 벗어나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한국은행에 금리를 내려 돈을 풀라고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금리인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금융자산 소득자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해 소비여력은 더 취약해지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금리인하 효과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일본처럼 국민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소비여력이 약화된 것이 문제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잘못된 처방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 부총리가 기업들이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논리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의 경영성과는 지금도 최악으로 내몰리는 중이다.

대체 무엇이 우리 경제를 디플레이션의 늪지대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디플레는 단언컨대 정부와 정치가 만들어 낸 정부 실패 때문이다. 고질적인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생산성 임금체제를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수년 동안 혁신을 금지하는 수많은 엉터리 경제 법률들이 쏟아진 것이 그 원인이다. 노동경직성은 임금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비정규직 등 경제 내부의 식민지적 노동시장을 만들어 내면서 평균적인 소비여력을 약화시켜 왔다.

최근 사례로는 단말기 유통시장의 정상적인 소비활동을 교란시킨 단통법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각종 규제정책과 무지의 법률들이 물귀신처럼 경제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 규제가 소비의 퇴장을 초래하고,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시장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며, 수백개의 도장을 요구하는 인허가 규제는 창의적 투자를 억제하고 있다. 대형마트 강제휴무만 해도 연간 적어도 3조원의 소비 감소를 초래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유통규제에 대해서는 국내외 수많은 논문이 나와 있다.

전통시장 보호론도 유통혁신을 가로막고 있고 골목상권 보호론은 골목경제의 창조적 파괴를 아예 금지한다. 유통구조개선법이 유통구조의 혁신을 가로막는 현상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기업구조조정을 틀어막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권을 큰 칼처럼 휘두르면서도 기업구조조정은 오히려 틀어막아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산업경쟁력을 급속도로 약화시키는 중이다.

정치권은 부작용을 뻔히 보면서도 더 큰 규제를 쏟아내고, 정부는 자기책임을 부인한 채 효과도 적은 정책수단인 금리만 탓하고 한국은행 핑계만 대고 있다. 그 어떤 경제적 혁신도 불가능하도록 기업활동을 모조리 틀어막아 놓고 디플레를 걱정한다는 정부 논리가 우습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니 보호니 하는 온갖 종류의 정치적 구호들이 난무하는 것은 한마디로 현상의 고수요, 이대로 살다 죽자는 것인데 그 결과를 지금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 무슨 디플레를 걱정한다는 것인가. 정부의 실패가 디플레이션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디플레의 늪지대에서 빠져나오는 첫걸음은 먼저 디플레의 원인인 정부 실패, 규제의 함정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야 살 길이 열린다. 이대로는 절벽으로 달려갈 뿐이다. 벌써 2017년 위기설, 2018년 위기설 등이 돌고 있지 않나. 디플레의 보이지 않는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둔하거나 비겁하거나, 아니라면 둘 모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