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 고려대 총장 "이공계 발전 구심점 역할…글로벌 高大 도약 기틀 마련"
만난 사람=이재창 지식사회부장

김병철 고려대 총장은 이달 말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학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2010년 총장 선거에서 ‘과학고대’와 ‘글로벌고대’를 내세워 당선된 김 총장은 첫 이공계 출신 총장이다. 그의 취임 1년 전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의 세계 대학 평가에서 191위에 머물렀던 고려대는 지난해 116위로 올라갔다. 지

난 23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캠퍼스에 만난 김 총장은 “세종시에 들어서는 제3캠퍼스 건립을 통해 첨단 과학 분야 연구를 주도할 기반을 다진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민족고대에서 세계고대로 도약할 토대를 마련한 게 보람”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고려대 총장이 지난 23일 고려대 본관 총장실 벽에 걸려 있는 역대 총장들 사진을 가리키며 고려대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김병철 고려대 총장이 지난 23일 고려대 본관 총장실 벽에 걸려 있는 역대 총장들 사진을 가리키며 고려대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재임 기간에 고려대 이공계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생명과학대 교수로 26년간 재직했기에 총장이 되면 이공계 발전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하려 했습니다. 고려대가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하는 데도 자연계열의 성장은 꼭 필요합니다. 대학평가 항목의 70~80%가 이공계열 분야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영국 QS 대학평가에서 고려대가 17개 학문 분야에서 세계 100위권에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8개가 이공계 분야였습니다. 융합학문 육성을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공동 융합전문대학원을 설립했고 국방부와 연계해 정보보호학을 가르치는 사이버국방학과를 키웠습니다. 내년부터 졸업생들이 소위로 임관해 사이버 테러 대비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2013년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참석하는 과학 축제를 열어 중·고등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취임 당시 내세웠던 ‘글로벌고대’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봅니까.

“고려대에 우수한 외국 인재를 유치해 친한국, 친고려대 외국인이 많아져야 내실 있는 국제화가 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적극적으로 학교 홍보를 진행하고 국가 장학생 유치에 심혈을 기울여 취임 첫해보다 정규학위 과정을 밟는 학생이 400명 넘게 증가했습니다. 교육 과정 자체를 프랑스에 수출한 ‘유라시아 MBA’는 경영대학의 자랑거리입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와 이스라엘 히브리대와는 지난해 11월 양해각서(MOU)를 맺고 에너지환경 분야에 대한 국경 없는 융복합 연구를 진행해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데요.

김병철 고려대 총장 "이공계 발전 구심점 역할…글로벌 高大 도약 기틀 마련"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좋은 대학 졸업장으로 성공한 건 아니잖아요. 요즘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성공하는 세상입니다. 우선 창업을 늘리기 위해선 한 번 넘어졌다고 실패라고 단정짓기보다는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은행에선 대출을 받으려면 꼭 담보를 요구하잖아요. 외국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도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금융권에서 담보를 요구하는 대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업에 성공하면 그에 대한 지분을 받는 조건으로 대출해주는 문화가 조성된다면 창업을 늘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죠.”

▷기업과의 협력이 중요해지는 추세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려대는 현대·기아차에서 제공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현대·기아차 펠로십을 만들어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쟁을 통해 선발된 10개 공동연구팀에 최소 3년간 연구비 등을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대학과 생명공학 관련 기업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약 개발,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 등 연구과제가 무궁무진합니다.” ▷몇 년째 계속된 등록금 동결로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대학의 설립 취지와 이념을 존중해 그에 따른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은 국가 기간산업 육성에 전념하고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 사립대는 지금보다 자율성을 강화해 각자의 강점에 기반을 둔 교육과 연구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지요. 최근 교육부가 진행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평가처럼 정원 7% 감축, 4% 감축 이런 식으로 인원 감축을 전제로 한 평가에 나서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규제보다는 자율성을 준 뒤에 문제가 있으면 그때 감사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최근 다른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포기하고 기업 연구원으로 옮긴 사례에서 보듯 대학에서의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형 국책과제는 수주 단계부터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5 대 1, 10 대 1의 경쟁률은 보통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연구과제를 수주하더라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요즘은 연구실마다 석·박사 학생이 많지 않아 연구 인력의 꾸준한 확보가 힘들어 교수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와주면 좋지만 이공계 기피 현상 때문인지 그렇지 못합니다. 연구비 관리와 정산도 교수가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업은 이윤창출이 목적이라 경영자가 지원만 해주면 과제를 쭉 연구해나갈 수 있는데 학교는 그런 부분이 어렵습니다.”

▷과거 총장들에 비해 대외활동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조용히 일해서 저력을 쌓게 하는 총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외활동에 집중하다보면 진짜로 집중해야 할 일에 쓸 시간을 뺏길 수 있어 부득이 외부활동을 줄였습니다. 고려대의 터전을 일군 조부 인촌 김성수 선생도 바깥활동보다는 주어진 일에 집중하는 편이었습니다.”

▷역대 총장 중에서 가장 많은 발전기금을 모았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임기 동안 1900억원대의 기부금을 모았지만 개인의 노력보단 늘 변함없이 응원해주는 30만 교우와 독지가들이 꾸준히 도와준 덕분입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둘째 아들의 후배 수백명에게 33년 동안 장학금을 주고 전 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한 문숙 여사와 평생 원단장사를 하며 마련한 4억원대 주택을 학교에 기부한 김부금 할머니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제도가 바뀌면서 대학들이 기부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2014년부터 기부금에 대한 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대학들이 기부금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커져 걱정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기부금 문화가 정착되는 단계였는데 아쉽습니다. 기부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선진국처럼 바뀌어야 합니다.”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100주년 때 이야기했듯 민족고대 100년, 세계고대 1000년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100여년 전 민족의 대학으로 출범한 만큼 후학들이 본인의 앞길만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라는 공동체를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았으면 합니다. 고려대의 교훈인 자유와 정의, 진리라는 가치를 고대인들이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병철 총장은…

△1949년 서울 출생 △1968년 중앙고 졸업 △1976년 서울대 축산학과 졸업 △1978년 고려대 식육가공학 석사 △1984년 독일 괴팅겐대 식육가공학 박사 △1985년 고려대 식품공학부 교수 △2006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학장 △2008년 고려대 교무부총장 △2011년 고려대 18대 총장

정리=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