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누가 독도 강치의 씨를 말렸나
최근 일본 내각관방은 전 초등학교 여교사 스기하라 유미코가 일본 학생들 앞에서 독도 강치에 대한 그림책을 설명하는 동영상을 유포해 큰 물의를 빚었다. 강치는 바다사자의 일종인데, 한국 동해안이나 울릉도독도에 서식하던 포유류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가제’ ‘가지’ 등으로 불러왔다. 그런데 강치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일본인들의 무차별적 사냥으로 결국 멸종되고 말았다.

이번에 그림책 ‘메치가 있던 섬’을 주된 내용으로, 일본인들이 소위 ‘다케시마’에서 ‘메치’를 잡아와 재미있게 지냈다고 주장한 전직 교사의 조부는 메치 포획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메치는 시마네현 오키섬 일대 주민들이 부르던 강치의 방언이다. 그렇다면 그의 조부는 강치 멸종에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적반하장격으로 일본 어민들이 강치와 친근하게 어울렸으며, 다케시마는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된 적이 없는 섬이라는 왜곡된 주장을 펼쳤다.

1904년부터 독도의 강치 사냥에 나섰던 나카이 요자부로는 1904년부터 1911년까지 1만2000여 마리의 강치를 잡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일본이 러일전쟁을 도발한 직후인 1905년 2월22일 일본 정부가 불법으로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직후부터 강치잡이는 절정에 달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04~1905년 사이에 5600여 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강치 가죽과 기름, 고기를 얻기 위한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남획으로 1910년대 중반부터 강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결국 멸종되고 말았다. 일본은 그런 무참한 동물 살육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강치를 끄집어내서 독도 침탈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있다. 지난 6일 해양수산부는 독도 해역의 해저지형에 ‘강치초’라는 우리말 이름을 붙이고 공식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의 무리한 주장과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국인들의 독도에 대한 친근한 인식과 함께 관심을 높이고, 국제적으로도 우리의 주장을 분명히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올해는 한국에는 광복 70년, 일본에는 종전(패전) 70년이 되는 해이며, 한일협정 체결 50년이 되는 해다. 한·일 양국 정부와 국민의 진정한 화해와 믿음에 바탕을 둔 교류협력을 기대한다면 일본 정부가 먼저 한국인들을 무시하는 언동을 삼가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장세윤 <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