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에 세계 석유 메이저들이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내년 실적 전망을 낮추고 잇따라 비용 절감을 선언하는가 하면 배당을 줄이고 자산 매각에 나서는 곳도 등장했다. 지난 6월 중순 이후 국제유가가 반토막 나면서 현금 유동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 10대 정유회사들이 위기 대응에 나선다는 것은 심각한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는 뜻”이라고 16일(현지시간) 전했다.
유가 급락에 '오일메이저' 휘청…유전 팔고 투자 축소
○유가 폭락에 투자 줄이고 자산 매각

세계 최대 정유업체인 미국 엑슨모빌은 최근 내년 실적 전망을 크게 낮췄다. 투자회사 오펜하이머의 파렐 게이트 유가분석 전문가는 유가가 평균 배럴당 65달러 선일 경우 엑슨모빌이 입을 손실이 한 해 150억달러(약 16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이 가격이 몇 년간 지속될 경우 손실액은 연 300억달러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급락에 '오일메이저' 휘청…유전 팔고 투자 축소
유가가 하락하면서 석유 메이저들의 주가는 지난 1년 새 크게 하락했다. 엑슨모빌(-11.12%), 셰브론(-15.41%), BP(-18.86%) 등 대부분의 기업이 올 들어 10~20%의 주가 하락을 겪었다. 미국 다우존스가 2441개 에너지 기업의 주가를 기준으로 산출한 다우존스원유가스 지수는 1년 새 15% 하락했다.

정유회사들은 유가 하락이 지속되더라도 기존 프로젝트를 쉽게 중단할 수 없다. 초기 탐사 및 개발 비용이 크기 때문에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석유 메이저들의 자산 중엔 1960~1970년대부터 탐사를 시작해 이제 막 원유 시추에 돌입한 곳이 많다. 알래스카와 북해 유전 등이 그 예다.

정유업체들이 유가 하락에 대처하는 방법은 신규 투자와 주주 배당을 줄이는 것이다. 캐나다 오일샌드와 북해 유전 등 미개척 신규 유전탐사는 올 들어 속속 중단됐다. BP와 로열더치셸, 셰브론은 자산 매각에 나섰다.

○정유업계 M&A 바람 불까

현재 전 세계 주요 유전 개발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국제유가가 최소 배럴당 80달러 이상이어야 손익분기점을 넘어선다. 배럴당 50~60달러 선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젝트는 브라질 산토스, 이라크 쿠르디스탄, 멕시코만 일부 지역, 케냐 유전 등 극히 일부다.

일부 정유업계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교하며 “아직 ‘초비상’이라고 단정 짓긴 이르다”는 평가를 내놨다. 2008년 7월 배럴당 147달러였던 국제유가는 2009년 1월 33달러까지 폭락했다.

1990년대 유가 폭락 때 엑슨모빌, 셰브론, BP, 토탈 등이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웠듯이 최근의 저유가 상황이 탄탄한 에너지 업체에는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몇 주 사이 정유서비스업체 할리버튼이 라이벌 회사 베이커휴스를 인수하고, 스페인 렙솔이 캐나다 업체 탈리스만에너지를 사들인다고 발표하는 등 실제 업계에서 M&A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회계법인 PwC의 애널리스트는 “중소 정유사가 눈치만 보고 있는 가운데 내년 정유업계에 한바탕 M&A 회오리가 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