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헌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질구조제어연구단장이 저온 탈질촉매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KIST 제공
하헌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질구조제어연구단장이 저온 탈질촉매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KIST 제공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다산기술상 대상의 영예는 하헌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물질구조제어연구단장에게 돌아갔다.

[제23회 다산기술상] 하헌필, 공해물질 처리 촉매 국산화…수백억 수입대체 효과
하 단장은 대표 공해물질인 질소산화물을 처리하는 촉매를 개발했다.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던 촉매를 국산화해 수백억의 수입 대체효과를 창출했다. 관련 기술을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이전하며 정부 출연연구소와 기업의 상생 모델도 제시했다.

하 단장은 한양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뒤 KIST에 입사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고체물리 지식을 기반으로 환경촉매 소재연구를 시작했다. 25년간 쌓은 다양한 연구 업적 가운데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성과는 촉매 기술 상용화다. 미세먼지의 주요 성분이며 스모그를 일으키는 대표 공해물질인 질소산화물을 처리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기존 환경촉매연구는 화학 반응공정 위주로 진행됐다. 새로운 소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해야 했다. 하 단장은 양자화학적 계산기법을 촉매 연구에 도입했다. 첨단 분석기법으로 촉매의 특성을 입증하는 방법으로 신 촉매물질을 개발했다.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원소에서 촉매 개발에 필요한 핵심 물질을 찾아낸 비결이다.

가루 형태인 촉매는 이를 담는 지지체(담체)에 따라 성능과 내구성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지지체에는 이산화티타늄에 고가의 텅스텐을 첨가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하 단장은 계산기법을 이용해 첨가량을 절반 이하로 줄이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비(非)전이 금속계 원소를 찾아냈다. 이를 활용해 전체 촉매 가격을 30% 이상 줄이면서도 촉매 효율은 뛰어난 신촉매 물질(Sb-V-TiO2)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중소기업 대영씨엔이에 이전됐고 포스코 광양제철소 소결로(燒結爐·용광로에 넣기 전 부스러진 광물을 구워 덩어리로 만드는 노)에 적용해 우수한 특성을 인정받았다. 그동안 질소산화물 촉매는 해외에서 전량 수입했다. 이번 개발로 수백억원의 수입대체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제철소뿐만 아니라 굴삭기 트럭 등 중장비 디젤엔진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을 처리하는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16년부터 연안의 유해가스 배출규제지역(ECA)을 운항하는 선박이 지켜야 하는 배기가스 배출 규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선박의 배기가스, 특히 질소산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이 높아진 이유다.

하 단장은 이 시장을 겨냥한 촉매 개발에도 성공했다. 선박엔진 배출가스를 처리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을 감안해 촉매 지지체를 복합산화물로 제조하고 표면도 특수 처리했다. 한 번에 6t까지 생산하고 선박엔진에 장착할 수 있는 생산 기술까지 개발했다. 이와 관련, 해외 4개국에서 국제특허도 출원했다. 관련 시장은 2019년 연간 8000억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 단장은 오래전부터 연구실 벽에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 유배됐을 때 머물던 ‘사의재(四宜齋)’란 곳의 명칭을 적은 문구를 걸어 놓고 있다.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지켜야 한다는 다산의 가르침을 새기려는 노력이다. 다산을 존경하는 그에게 이번 다산기술상 수상이 더욱 뜻깊은 이유다. 하 단장은 “계산과학을 기반으로 신물질을 찾는 선진 기법을 더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환경촉매 연구를 확장해 글로벌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