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7월10일 오후 5시10분

한국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매체 마켓인사이트가 한국의 중견기업을 분석한 ‘신(新)중견기업 열전’을 게재합니다. 한국 산업계의 허리로 자리매김한 중견기업들의 성장 과정과 전략, 재무상태 등을 집중 조명하는 시리즈입니다. 각 기업 탐방 취재를 바탕으로 공인회계사와 증권사,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의 조언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중소기업기본법 상 중소기업 범위를 넘어선 기업 중 자산 5조원 미만이 대상입니다. 한국경제신문 지면에는 요약본을 게재하며, 상세한 기사는 마켓인사이트(www.marketinsight.kr)에 실려 있습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62)이 고향 부산에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은 26세이던 1979년이었다. 손윗동서가 차린 제과점을 운영하다가 동대문 의류상가에 들어선 건 29세 때였다. 3.3㎡(1평)짜리 동대문 옷가게가 모태가 된 형지는 지금 연매출 1조원(판매가 기준) 규모의 종합패션그룹으로 성장했다.
[마켓인사이트] 형지, 동대문 1평 옷가게서 1조 패션그룹으로…"3년내 3배 더 크겠다"
○전문화와 다변화의 조화

의류업체 형지를 세상에 알린 첫 브랜드는 1996년 내놓은 ‘크로커다일 레이디’였다. 싱가포르 남성복 브랜드 ‘크로커다일 맨’의 여성복 제조 라이선스를 따낸 뒤 국내시장에 선보였다. 세련된 디자인에 재래시장 가격이었던 크로커다일 레이디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크로커다일 레이디로 큰돈을 번 형지는 2006년부터 확장을 시도했다. 브랜드 다변화에 나선 것이다. 샤트렌, 올리비아하슬러, 라젤로, 아날도바시니, CMT 등 신규 브랜드를 매년 내놓았다.

2012년부터는 ‘내부역량 강화’에 치중한 성장전략을 ‘외부 인수합병(M&A)에 의한 레벨 업’으로 변화시켰다. 첫 번째 타깃은 와이셔츠 브랜드 ‘예작’ 등을 보유한 우성I&C였다. 여성복에만 집중하던 형지가 종합패션업체로의 변신에 나서는 신호탄이었다.

형지는 그해 8월 아웃도어(노스케이프)에 뛰어들었고, 작년 9월에는 에리트베이직을 인수하며 학생복 시장에 진출했다. 작년 5월에는 서울 장안동 복합쇼핑몰 바우하우스를 매입하며 유통업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같은해 7월 베트남 의류생산공장(C&M)을 사들이며 제조공장도 갖췄다. 지난 5월에는 프랑스 브랜드 ‘까스텔바작’의 국내 상표권을 인수해 골프웨어 시장에도 진출했다.

○M&A로 3년간 3배 확대

형지의 전략은 ‘2017년 그룹매출 3조원 달성’에 맞춰져 있다. 3년 내 덩치를 3배 키운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적극적인 M&A에 나서기로 했다. 강수호 패션그룹형지 최고재무책임자(CFO·상무)는 “자본시장을 통해 언제든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에리트베이직과 우성I&C 등 상장사를 인수주체로 내세울 방침”이라며 “에리트베이직의 보유 현금 280억원도 M&A 재원으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타깃은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동복, 영캐주얼, 구두 등 현재 진출하지 않은 패션분야가 1순위다. 잡화의 경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인수 검토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김진택 패션그룹형지 법무팀 부장은 “매출 500억~2000억원 수준의 중저가 브랜드를 중심으로 M&A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형지의 사업모델이 프랜차이즈인 만큼 외식 프랜차이즈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사업도 확대한다. 지난달 부산 사하구에 연면적 6만㎡ 규모의 바우하우스 2호점 착공식을 가진 데 이어 2017년까지 쇼핑몰 수를 5개 이상으로 불린다는 구상이다. 1840개에 달하는 가두 점포망을 활용한 신사업을 검토 중이다. 우성I&C의 남성복 브랜드 ‘본’ 등을 앞세워 중국시장 공략도 강화할 계획이다.

하지만 투자은행(IB) 업계에선 형지의 ‘3년 내 3배 성장’ 목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크로커다일 등 핵심 브랜드가 정체 상태에 빠진 데다 잇따른 M&A로 재무구조도 악화돼서다.

○간결한 지배구조
최병오 회장 ‘1인 체제’…두 자녀 경영수업 중

형지그룹의 지배구조는 간결하다. 최병오 회장과 두 자녀가 주요 계열사 지분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핵심 기업인 패션그룹형지 지분은 최 회장이 100% 갖고 있다. 우성I&C, 샤트렌, 형지리테일, 바우하우스 역시 최 회장과 두 자녀가 안정적인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계열사 간 상호출자나 순환출자로 얽힌 것도 없다. 최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너무 높다 보니 일각에선 “덩치만 중견그룹일 뿐 운영 방식은 개인 오너가 이끄는 중소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형지 측은 반대로 “오너가 월급쟁이 사장 뒤에 숨지 않고 직접 책임경영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포스트 최병오 시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최 회장의 두 자녀가 이미 상당한 지분을 상속받은 데다 형지 계열사에서 실무를 익히고 있어서다. 패션그룹형지 전략기획본부 이사인 장녀 혜원씨(34)와 우성I&C 마케팅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 준호씨(30)는 유통업체인 바우하우스 운영법인 (주)바우하우스 지분을 각각 50%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우성I&C 지분도 각각 3.67% 보유하고 있다. (주)바우하우스가 우성I&C 지분 6.28%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남매의 실질적 지분율은 13.62%에 이른다.

혜원씨와 준호씨는 매년 100억원 안팎의 이익을 내는 알짜 비상장사인 형지리테일과 샤트렌의 주요주주이기도 하다. 최 회장 49%, 혜원씨 31%, 준호씨 20% 순으로 나눠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상헌/오동혁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