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력대란 예방책, 스마트그리드에 있다
여름이 일찌감치 시작된 느낌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어김없이 ‘전력수급 위기’가 화제가 된다. 다행히 올여름은 작년보다는 덥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늦췄다간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어떤 낭패를 보게 될지 모른다. 평상시 전력수급 상황이 안정적이더라도 갑작스런 폭염이나 열대야, 발전소 고장 등의 변수로 인한 위기는 예방이 불가능하다. 현재 상황이라면, 아무리 전력예비율이 높고, 기온이 안정적이라고 해도 일반 가정은 물론 상가, 빌딩, 공장 등에 이르는 에너지 수요자들에게 끊임없이 ‘절약’을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해마다 반복되는 불안과 긴장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에너지 사용자의 불편함은 최소화하면서도, 전력 수요를 탄력적으로 조절해 전력 수급 균형을 구현하는 스마트그리드에 있다. 스마트그리드는 전력산업과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을 일컫는다.

한국은 2009년 주요 8개국(G8) 기후변화주요국 회의에서 스마트그리드 선도국가로 지정됐다. 안정적인 전력 인프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경쟁력, 한국인 특유의 창의성과 실행력이 가장 이상적인 스마트그리드의 미래를 보여줄 최적의 국가로 꼽히게 한 것이다. 같은 해 3월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의 스마트그리드 로드앱을 수립한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 스마트그리드의 현주소는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5년 전과는 판이하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실증 수준을 넘어 마이크로그리드, 스마트그리드 구축사업을 앞다퉈 추진했다. 스마트그리드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분야로 꼽혀온 특허 출원은 오히려 감소 추세다. 특허청에 따르면 원격 검침 인프라의 경우 미국과 유럽 4개 기업의 특허 보유 비중은 70%로, 특허 분쟁에 휘말릴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역시 스마트그리드 국가 로드맵이 확정된 2009년을 전후로 정부와 민간이 함께 사업활성화를 위해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시장 성장과 전국 단위의 스마트그리드 보급 규모는 기대에 비해 미미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여력이 부족하거나 성장성에 대한 기대를 접은 많은 기업이 사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장 개화가 지연된 것은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고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확대할 수 있는 전국 단위 확산시기가 늦춰진 탓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2012년부터 스마트그리드 시범도시를 구축할 계획이었으나 두 차례나 추진 시기가 연기된 바 있다.

그렇다고 스마트그리드 선도국의 위상을 되찾을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내년부터 본격 추진하게 될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이 희망이다. 이 사업은 제주 실증사업을 바탕으로 검증된 사업모델을 확산시켜 민간 주도 시장의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정부·지자체·민간기업이 약 8800억원의 투자계획을 갖고 있는 확산사업이 성공하면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정부는 창조경제의 실현과 에너지 안보확립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소비자들은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통해 비용 절감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확산사업의 성패는 안정적인 예산확보와 정부·지자체·기업의 긴밀한 협조, 적극적인 소비자 참여에 달렸다. 스마트그리드 확산사업이 많은 기업이 기술을 선도하고 해외 시장으로도 진출하는 주춧돌이 돼 스마트그리드 선도국으로서의 한국 위상을 다시 한 번 드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구자균 < LS산전 부회장·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