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패션을 입다…웨어러블 기기 디자인 전쟁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본질적인 영혼이다(Design is the fundamental soul of a human-made creation).”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 창업자의 말이다. 그는 정보기술(IT) 기기의 디자인을 강조해 소비자에게 ‘애플=디자인’이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후 IT 기기에서 디자인은 흥행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웨어러블 디바이스(입는 컴퓨터) 시대엔 디자인, 즉 패션적인 요소가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기능보다는 오히려 패션에서 승부가 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구글 애플 삼성전자 등 IT업체와 패션업체들의 협업(컬래버레이션)이 늘어나는 이유다.

◆룩소티카 구글 글라스 나온다

2012년 9월 미국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열린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VF)’ 패션쇼에서 모델들은 안경을 쓰고 등장했다. 구글과 협업해 런웨이에서 ‘구글 글라스’를 선보인 것이다. 관람석 맨 앞줄엔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 창업자가 앉아있었다. 쇼가 끝난 뒤 퍼스텐버그는 브린을 무대로 이끌었다. 그들은 함께 구글 글라스를 쓰고 인사를 했다.

그로부터 1년 반 뒤인 지난달 구글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탈리아 패션 안경업체 ‘룩소티카’와 협업해 다양한 디자인의 구글 글라스를 개발하기로 했다. 제품 제작과 유통은 룩소티카가 맡는다. 룩소티카는 레이밴 오클리 등 안경 브랜드를 보유한 업체다.

삼성전자가 모스키노와 함께 선보인 갤럭시노트3 전용 액세서리.
삼성전자가 모스키노와 함께 선보인 갤럭시노트3 전용 액세서리.
◆삼성, 스와로브스키와 협업


삼성전자는 스마트밴드 ‘기어 핏’의 밴드 스트랩과 관련해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국내에서 선보인 기어 핏 스트랩은 블랙 오렌지 모카그레이 3종. 스와로브스키와 작업한 제품은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스와로브스키 이외에 다른 패션 브랜드와 협업,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작은 스마트워치나 스마트밴드에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은 많지 않다”며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기능보다 패션적인 요소를 더하는 게 훨씬 쉬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얼리 브랜드 ‘팰론’과 손잡고 만든 갤럭시기어, 갤럭시노트3 전용 액세서리.
주얼리 브랜드 ‘팰론’과 손잡고 만든 갤럭시기어, 갤럭시노트3 전용 액세서리.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스와로브스키와 협업해 스마트폰 갤럭시노트3의 백 커버 3종을 발표했다. 이 제품은 스와로브스키 뉴욕 매장 등에서 팔았다. 1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에서 ‘갤럭시노트 프로’와 ‘갤럭시 노트 10.1’을 패션 브랜드 ‘준지’에서 제작한 전용 액세서리와 함께 공개했다. 준지는 에버랜드 소속 브랜드다.

◆애플, 패션계 거물 속속 영입

애플이 개발 중인 ‘아이워치’(가칭)엔 패션업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지난해 7월 고급 패션 브랜드 이브생로랑의 전 최고경영자(CEO) 폴 데네브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어 안젤라 아렌츠 전 버버리 CEO도 고용했다. 나이키 ‘퓨얼밴드’를 디자인한 벤 셰퍼와 개발자 제이 블라닉도 불러들였다.

최근엔 애플이 올가을 아이워치를 수천달러에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궈밍치 대만 KGI증권 연구원은 아이워치의 가장 비싼 모델 가격이 수천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패션계 거물들을 영입한 애플이 비쌀수록 잘 팔리는 패션업계의 마케팅 기법을 적용해 이익률을 확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웨어러블 시대에 IT와 패션 업계가 주도권 싸움을 벌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단순한 ‘기기’가 아닌 ‘패션’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더 파격적인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앞으로 IT업계와 패션업계가 웨어러블 디바이스 주도권을 두고 경쟁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