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AFTER ALL]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창의성은 '상상하는 습관'…가르치는 게 아닌 길러지는 것"
“창의성은 컴퓨터 기술처럼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문학과 예술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상상하는 습관이 길러지는 것이다.”

지난 10~1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새로운 경제적 사고를 위한 연구소(INET) 콘퍼런스’에서 만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61·사진)는 한국의 ‘창조 열풍’에 대해 “한국이 ‘창조 국가’로 나아가려면 학교 교육에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

“한국인은 사회가 직면한 정의나 시장주의 문제를 토론하려는 열망이 강한 것 같다. 2012년 한국의 한 대학에서 1만4000명의 시민과 정의, 공정함, 시장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한 적이 있다. 내 생애 가장 흥분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세계 20여개국에서 ‘북 투어’를 했지만 한국처럼 공개 토론하는 문화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이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국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뤘다. 다음 단계는 민주주의를 깊이 있게 진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민들이 질문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상대가 누가 됐든 도전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에 대한 태도와 습관을 바꾸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중문화가 전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토론 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현명함을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서 수학, 과학만이 아니라 시민의 자질을 키우기 위한 철학과 정치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대학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를 배우게 해야 한다.”

▷한국에선 요즘 화두가 ‘창조경제’인데, 창의성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슨 목적으로 창의성을 가르치려고 하는가. 컴퓨터 기술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창의성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창의성을 컴퓨터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음악가 등 특정 직업을 갖기 위한 직업기술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창의성은 ‘생각하는 습관(habit of mind)’이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예술을 배우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상상하는 습관과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해결 방법은 뭘까.

“오늘날 시장가치가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사랑과 우정, 가족, 인간관계, 건강과 교육, 시민적 덕목과 정치까지도 말이다. 기본적 인간생활에 필요한 의료와 교육은 시장가치로부터 보호돼야 하는 영역이다. 저소득층에 의료복지와 교육투자를 늘리면 불평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그 밖에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들은 무엇인가.

“미국은 선거 캠페인마저 돈이 지배하고 있다. 돈을 주고 산 선거 캠페인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일반 시민 보다는 돈 많은 사람들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시장가치로부터 보호해야 할 것들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면 돈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20년간 하버드 최고 강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61)는 지난 20년간 하버드대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정의(justice)’를 강의했다. 국내에서도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2010년 번역 출간돼 큰 인기를 얻었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샌델 교수는 197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발리올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82년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 존 롤스를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그는 2012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출간 기념으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1만4000명을 대상으로 공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토론토=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