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직전의 자본시장을 살리려는 노력이 각종 정부 정책과 증권사 인력 구조조정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맥을 잘 짚어 고통의 시간이 줄어들길 바라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 충격파는 또 다른 악재다. “세금 문제는 건드릴 수 없다”는 식으로 선을 긋기보다 국민경제적 지원이 가능한지 살펴볼 때다. 관계와 학계, 업계 출신 전문가 제언을 통해 자본시장 회생의 지름길을 알아봤다.

권혁세 前 금감원장 "정부, 국민 노후자산 수익내기 TF 만들어야"
“국내 자본시장은 ‘3무(無)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요 요소인 고객 신뢰, 운용사의 자신감, 글로벌 수준의 토종 플레이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사진)은 주식거래량 감소나 회전율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서다. 대신, 시장과 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개미’들이 컴백하지 않는 게 근본 문제라고 진단했다.

권 전 원장은 700조원에 이르는 시중 부동자금의 일부라도 증시로 유도하려면 결국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노후 대비 자산 운용이 국가경제 차원에서 지금처럼 중요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권 전 원장은 “국내 개인 금융자산 2500조원 가운데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퇴직연금 등에 들어있는 노후자산은 750조원 정도”라며 “이들 기관이 저금리, 저성장시대에 어떻게 자금을 운용하느냐가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관행대로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하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수십조원씩 손실이 나면, 결국 정부가 메워줘야 하는 사태가 온다는 것이다.

예금이자 수준인 낮은 노후자산 수익률은 내수침체 3대 요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최근 3년간 30% 급등한 주택 전세가격에 이어 노후자산에서 돈이 나오지 않아 내수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공기업 개혁 드라이브로 올해부터 공기업 자산매각이 늘어날 텐데, 자본시장이 계속 죽어있으면 이런 물건들이 팔릴 리 만무하다. 이런 점에서 올해는 노후자산 운용기관을 포함한 기관투자가의 증시 참여도를 높이는 원년이 돼야 한다고 권 전 원장은 목청을 높였다. 현재 한국의 연기금 주식시장 투자 비중은 19%인 데 반해 미국은 45%, 호주는 52%에 이른다.

“과거엔 정부 정책에 동원되는 듯해 기관의 주식운용 확대에 대한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 재산을 제대로 관리해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연기금 등의 주식투자 관련 각종 규제의 족쇄를 풀어줘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 운용에 책임을 묻는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권 전 원장은 “운용사가 일정 범위를 지켜 운용하면 면책되도록 감사원 등이 기준을 명확히 만들어줘야 한다”며 “은행도 고유자산과 신탁자산을 주식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내규 등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공허한 메아리가 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권 전 원장은 짚었다. 그는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감사원 등이 범정부적으로 ‘국민 노후자산 수익 제대로 내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 모든 문제를 진단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호주를 예로 들었다. “호주도 수십년 전에는 금융선진국이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퇴직연금신탁 가입을 강제했죠. 이걸로 주식시장 자산운용을 적극적으로 하게 했습니다. 맥쿼리 등의 성장기반이었죠. 이제는 호주가 세계 자산운용시장 톱3에 들어가는 금융강국이 됐습니다.”

권 전 원장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경제 활력과 역동성을 살려야 ‘창조경제’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은행 위주 간접금융시장에 치우친 오랜 금융 관행이 이를 가로막고 있어, 물꼬를 자본시장으로 터주는 과제를 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글=장규호/사진=정동헌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