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기업은 창조경제의 '엔진'으로 꼽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경제 불황기에는 벤처 창업가의 창의성과 혁신이 돌파구로 주목 받곤 합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창업→성장→회수→재투자→재도전'이란 벤처 생태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안될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나선 1세대 창업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후배 벤처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엔젤 투자자'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한국 대표 엔젤투자가들의 투자 성공 사례와 방향을 본다면, 불황기 타개 전략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노정석 파이브락스(5rocks) 최고전략책임자(CSO)
노정석 파이브락스(5rocks) 최고전략책임자(CSO)
"되돌아보니 리스크(위험)의 크기는 언제나 리워드(보상) 크기와 같더라고요. 리스크를 회피하면서 보상을 바라는 것 자체가 일단 오류입니다.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면 언제나 편한 것보다는 위험한 쪽을 택해 왔습니다."

'전설의 해커'에서 벤처 기업가로 변신한 노정석 파이브락스(5rocks)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벤처 업계에서 롤 모델로 꼽히곤 한다. 그는 카이스트 재학 시절 포항공대 해킹 사건으로 구금되기도 했고, 창업한 테터앤컴퍼니를 국내 최초로 구글에 매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또 다른 역할을 갖고 부터다. 바로 후배 벤처 사업가들을 위해 엔젤 투자자로 나선 것. 그는 '티켓몬스터'를 성공적으로 키워내면서 스타트업(신생벤처) 지원 프로그램인 '패스트트랙아시아(Fast Track Asia)'를 설립하기도 했다.

노 CSO는 "엔젤투자는 자금을 투자한다는 개념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내가 돕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엔젤투자에 대해 내리는 정의 또한 남다르다.

◆ 티몬, 600개 경쟁사 뚫고 성장…핵심 동력은 '팀'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가 팀이며, 팀의 리더(Leader)입니다. 또 최근에는 어떤 팀에 투자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정확히 말하면 같이 일하며 함께 발전하고 싶은 팀에 투자합니다."

노 CSO는 '티켓몬스터'의 엔젤 투자자로 잘 알려져 있다. 티켓몬스터 사업 초기단계부터 함께해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 업체로 클 때까지 조력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티켓몬스터에 투자를 결정한 것도 팀의 잠재력을 봤기 때문이었다.

"티켓몬스터 사업 초기에도 600여개의 소셜커머스가 난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티몬에 투자를 결정한 것은 신현성 대표가 고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신 대표와 똑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팀들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박수를 쳐주면 충분히 성공할거란 확신이 들었죠"

노 CSO는 같은 의미에서 '미미박스'의 하형석 대표와 '눔(NOOM)'의 정세주 대표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미미박스'는 국내에서 화장품 월간 구독이란 모델을 정착시키고, 최근 미국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NOOM'은 다이어트 앱 중 명실공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 노 CSO의 코치를 받았다.

이제까지 노 CSO가 투자한 회사는 총 15곳이다. 이 중 티몬은 그루폰이, 소셜게임 전문개발사인 파프리카랩은 일본 그리(GREE), 음성인식 문자전송 앱 다이알로이드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인수했다.

스타트업들도 엑시트(EXIT·창업한 회사를 키워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것)할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여럿 남겼다. 그가 투자한 울트라캡숑, 파프리카랩, 로켓오즈, 타파스미디어, 쉐이커미디어, 클럽베닛도 성장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노 CSO의 투자 금액은 각각 5000만원~2억원 사이다.

◆ "벤처 성공? 스타 엔젤투자자 많이 나와야"

노 CSO는 스스로 '창업가'로 불리는 것을 원하기에 역설적으로 '투자자'로서의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그는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들다는 창업을 네 번했다. 그 만큼 벤처 생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약 30년 전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수 많은 성공한 사업가들이 리스크를 감안하고 투자합니다. 그리고 투자가 성공하면 산업이 또 커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 있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성공한 벤처사업가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는 국내에서도 젊은 창업가들이 계속 나오기 위해서는 과잉투자가 좀더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창업가 100명을 만들어야 그 중 성공하는 1명이라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벤처가 옳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래 성장과 고용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판이 더 커져아 합니다. '스타' 엔젤투자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벤처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창업에 나서는 후배들을 위해서는 '독특한 시각'을 갖추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라고 당부했다.

"시장은 언제나 당신보다 똑똑하다, 고객 역시 언제나 당신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합니다. 고객을 옆에서 쳐다보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반드시 답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맞아, 저방향이야'라고 할 수 있는 약간의 '똘끼'도 필요하고요."

노 CSO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극장에서 영화표를 사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가 투자한 완성도 높은 스타트업 작품들은 지금도 절찬리 상영 중이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