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朴-케리 회동 >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브루나이 인터내셔널 컨벤션센터에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석 중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朴-케리 회동 >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브루나이 인터내셔널 컨벤션센터에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석 중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3), 시진핑(5), 아베 신조(8).’

박근혜 대통령(2월 취임)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3월 취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지난해 12월 취임)가 각각 방문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 숫자다. 3국 정상은 지난 7일부터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다자외교 무대에서도 아세안을 붙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아세안 10개국은 역내 경제 규모(GDP 기준) 2조달러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능가하는 단일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10일 “이번 APEC과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최고 이슈는 아세안을 무대로 세 정상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포스트는 “마치 총성 없는 싸움과도 같다”고 보도했다.

전날 박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들과 단독으로 만나 ‘세일즈 외교’를 벌이기에 앞서 아베 총리도 뒤질세라 아세안 정상들과 회동했다. 시진핑 주석을 대신해 리커창 중국 총리도 비슷한 자리를 가졌다. 이날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도 3개국 정상의 ‘아세안 구애작전’은 치열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아세안에 가장 먼저 공을 들여온 곳은 일본”이라며 “아베 총리도 취임 후 해외 첫 순방지로 동남아 국가를 선택할 정도로 아세안 중시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미 네 차례에 걸쳐 8개국을 찾아 해당국 정상과 회담을 열었다. 이번 아세안+3 정상회의를 마치자마자 10월 중 나머지 2개국인 라오스 캄보디아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의 추격전도 만만찮다. 정부 관계자는 “시 주석이 취임 이후 일본을 추격하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며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관계가 일본보다 우세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했다. 시 주석은 이번 APEC 정상회의에 앞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찾았다. 인도네시아 방문 중에는 외국 정상으론 처음으로 국회 연설에서 “2020년까지 아세안과 무역 규모를 1조달러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아베 총리가 이번 APEC에서 자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성격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강하게 밀어붙이려 한 것도 아세안 국가들과 교역관계를 넓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한국 정부의 분석이다.

박 대통령도 취임 첫해 외교 초점을 아세안 지역으로 맞추고 연내 10개국 정상과 개별 접촉할 계획이다. 전날 아세안 정상들과의 회동에서 그동안 주변 4강(미·중·일·러)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향후 아세안 중시 외교를 펼치겠다”고 선언한 것도 중국과 일본에 뒤질 수는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일이 자국 이익을 내세워 경쟁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아세안의 ‘신뢰와 행복의 동반자’라는 메시지를 부각시켜 신뢰외교로 차별화하겠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를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이동했다.

자카르타=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