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성기(왼쪽부터), 임권택 감독, 김훈 작가가 영화 ‘화장’ 제작발표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안성기(왼쪽부터), 임권택 감독, 김훈 작가가 영화 ‘화장’ 제작발표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훈 선생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칼의 노래’를 영화화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화장’을 연출하게 됐어요. ‘화장’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숨기고 사는 성적인 일부를 정직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원작자 문장이 주는 엄청난 힘과 박진감을 영상으로 담아낸다면 또 다른 영화가 탄생하게 될 겁니다.”

임권택 감독(77)이 소설가 김훈 원작의 ‘화장’을 자신의 102번째 영화로 연출한다. 오는 12월 촬영에 들어가 내년 봄에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이래 2001년 ‘달빛 길어올리기’까지 모두 101편을 연출한 임 감독은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한국 영화 고유의 미학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취화선’이 대표적이다. 그의 회고전이 열린 4일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신작발표회를 가졌다.

“‘화장’은 극적인 요소가 강한 얘기가 아닙니다. 죽어가는 아내를 병수발하는 중년 남자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생명력에 빨려들어가다 둘 다 떠나보내는 이야기죠. 여성에 대한 중년 남자의 마음을 섬세하게 따라가 영상으로 담아볼 생각입니다. 잘못되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잘하면 칭찬받을 수 있겠죠.”

이 영화는 임 감독이 ‘서편제’ ‘취화선’ ‘천년학’ ‘달빛 길어올리기’ 등 최근작에서 한국 전통문화와 예술혼을 담아낸 것과는 다르다. “문화란 옛날이든 현대든 사람이 이뤄내는 것입니다. 판소리나 한지 등을 소재로 하지 않더라도 현대의 일상에서 소리 없이 묻어나는 한국인의 감정을 보여준다면 한국 문화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임 감독은 102번째 작품에 대한 의미도 들려줬다. “영화는 삶이고 체험의 누적입니다. 나이만큼 살아낸 체험을 영상에 옮길 수 있다는 뜻이죠. 패기와 순발력은 젊을 때에 못 미치겠지만 삶의 사려 깊음을 더 잘 담아낼 수 있을 겁니다.”

임 감독과 ‘만다라’ 등 7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한 배우 안성기 씨가 주인공 오상무 역을 맡았다. 그는 “이 소설이 이상문학상을 받았을 때 읽었는데 주인공이 제 나이와 비슷해 영화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배역”이라며 “오상무는 굉장히 집중하고 몰두해야 할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원작자 김훈 씨는 “이 글을 쓸 땐 젊은 여자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생명력과 인간의 생로병사를 한 덩어리로 전개시키는 게 목표였다”며 “드러내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게 많았는데 그것을 눈에 보이도록 삶의 전면에 끌어내주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오상무는 세속에 찌들고 타락했지만 조직에서는 인정받는 인물”이라며 “소설에서 연애가 미수에 그치지만 영화에서는 로맨스가 이뤄지고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 회고전에서 임 감독의 작품 101편 중 상영이 가능한 71편을 선보인다. 디지털로 복원된 ‘삼국대협’(1972년)을 비롯해 ‘짝코’ ‘안개마을’ ‘티켓’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상영 중이다.

부산=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