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갑부·외국기업 '베이징 엑소더스'
중국 베이징에 사는 커크 코딜 BMW차이나 최고경영자(CEO)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베이징의 공기오염이 심각하다는 발표가 나온 이후 중국 지사 근무를 희망하던 중역급 인재 대부분이 줄줄이 파견 근무를 철회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로 가족이 반대한다’는 이유에서다.

상하이에서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중국판 유튜브인 ‘투더우’를 공동 설립, 성공적으로 운영하던 마크 반 데어 치스 대표는 13년간의 중국 생활을 청산하고 최근 캐나다 밴쿠버로 터전을 옮겼다. 그는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핀란드 오크메틱사의 페테리 피리넨 아시아부문 대표는 홍콩 근무 1년 만에 네 명의 가족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홍콩에서 산 지 몇 달 만에 심한 천식을 앓았기 때문이다.

‘차이나 엑소더스(중국 대탈출)’가 가시화되고 있다. 환경 문제가 건강을 위협하면서 중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물론 중국인들의 해외 이민도 급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은 수년간 글로벌 경영인들의 전투장이자 명문 MBA 출신의 경영 시험장이었던 중국이 환경이라는 암초에 걸려 위기에 직면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여기에 신종 조류인플루엔자(AI), 돼지 집단 폐사 등 악재가 겹치면서 외국인의 중국 탈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환경보호청과 중국 환경보호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베이징 공기오염도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의 35배 정도다. 영국 의학전문지도 2010년 대기오염으로 중국 내 120만명이 조기 사망했으며, 환경오염이 흡연에 이어 중국의 주요 사망 원인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보다 대기오염이 덜하다고 알려진 홍콩도 외국인들이 점차 멀리하고 있다. 헤드헌팅업체 보르의 루이사 웡 대표는 “오염이 덜한 곳을 찾아 베이징 사람들은 상하이로, 상하이 사람들은 홍콩으로, 홍콩 사람들은 해외로 떠나고 싶다는 요청이 몇 달 새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주중유럽상공회의소 관계자도 “귀국을 희망하는 직원들의 첫 번째 이유가 대기오염”이라고 설명했다.

환경 악재는 세계 2대 경제 대국인 중국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2010년 기준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60만명. 중국의 지난해 중국 내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1120억달러(약 125조원)였다. 이는 전년 대비 3.7%가 줄어든 규모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첫 감소다.

중산층 지식인을 중심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신화통신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중국인 15만명이 해외 이민을 떠났다. 이민자의 13%가 선택한 1위 이민국은 뉴질랜드였으며 캐나다, 호주, 미국이 뒤를 이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자산 1억위안(약 180억원) 이상을 가진 중국인 사업가 중 27%는 이미 이민을 떠났고, 나머지 47%는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화통신은 중국의 해외 이민이 1970~1980년대에도 많았지만 요리사, 미용사 등 블루칼라의 기술 이민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최근 회계사, 변호사, 엔지니어가 중심이 된 화이트칼라의 투자 이민이 크게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거부인 런즈창 화위안부동산그룹 회장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먹거리와 건강, 자녀 교육과 삶의 질까지 위협받고 있는 것이 이민의 주요 사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