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창조는 생각의 축적 아닌 순식간에 도달하는 깨달음
“내가 만일 그 사람이라면?” 가로 세로 각 여섯 칸에 유명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주사위를 굴려 나온 인물의 입장이 돼 지금의 내 문제를 생각해 본다. 손님이 별로 없는 식당을 운영하는 나는 주사위를 굴려 패리스 힐튼의 입장이 돼 머리를 굴려본다. 모르긴 해도 단골들에게 화려한 쇼핑백을 선물하거나 식당 입구에 카메라를 든 가짜 파파라치를 세우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비즈니스 플레이그라운드》에는 모두 12개의 보드게임이 들어 있다. 책 제목대로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며 얻은 아이디어와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고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저자 데이브 스튜어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룹 ‘차일드’ ‘유리스믹스’의 멤버로 19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가수였고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였다. 그가 관여했던 앨범은 1억장 이상 팔렸다. 최근에는 걸그룹 원더걸스에게도 곡을 만들어 줬다. 그런 그가 크리에이터 혹은 이노베이터로 명성을 쌓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지금은 노키아의 ‘체인지 에이전트’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

책의 첫장엔 주사위 2개를 만들 수 있는 도면이 있다. 일단 오려서 만들고 책 읽기를 시작한다. 순서도 없다.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의 장으로 가서 책을 읽으면 된다. 황당하지만 저자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 “창조적 사고는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과정이 아니다. ‘느낌’ ‘직관’ ‘통찰’처럼 순식간에 도약하는 깨달음의 순간이다. 이 책도 그렇게 읽어주길 바란다.”

앞서 패리스 힐튼의 역할놀이처럼 군데군데 게임과 에피소드가 숨어 있다. 창조적 사고에 이르는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상식이란 미명 아래 잘못 알려진 비즈니스 현장을 콕콕 집어낸다.

가령 “집단적인 브레인스토밍이 모든 참가자의 시간과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사람들을 좌절과 혼란에 빠뜨리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잘못된 우월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성과를 돈으로만 보상하는 것은 개인을 ‘특정한 결과를 위해 효율적인 방법을 반복하는 행위’로 몰아가기 쉽다. 신상필벌의 원칙도 제시한다.

‘우주를 놀라게 하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는 스티브 잡스가 펩시콜라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존 스컬리를 영입한 결정적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당신은 평생 설탕물만 팔 건가요,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겠습니까?”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