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훈현 선생님과 대국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되새기는 과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바둑은 실수를 적게 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란 사실이다. 이는 싸움을 회피해온 내 바둑의 본질,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싸움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싸움의 변화에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실수가 두려웠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승부에 임할 때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일단 전진하면 실패의 여지를 없애야 하고 부동(不動)할 때는 불필요한 기미를 보이지 않아야 상대를 서서히 제압할 수 있다. '

《이창호의 부득탐승(不得貪勝)》은 서른여섯 살의 '신산(神算)' 이창호 9단이 들려주는 바둑이야기다.

'부득탐승'이란 승리를 욕심내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의미다. 궁극적으로 이기려면 버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둑 십계명의 첫 번째 원칙이자 나머지 아홉 가지 실천 강령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책에서 '국민기사' 이창호는 오랜 세월 수도사처럼 지켰던 침묵을 깨고 바둑의 묘미,이기기 위해 버릴 줄 아는 지혜,변화의 당위성,상대적 느림과 절대적 느림의 개념,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에 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바둑 본연의 매력과 가치를 환기시킬 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의 단초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그의 드라마틱한 승부 인생과 심오한 바둑철학을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직장과 사회에서 생존 전략을 찾는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인생이란 게임의 법칙과 생존의 필살기를 습득할 수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