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용지 업계가 종이 값 인상을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펄프 등 종이를 만드는데 쓰이는 원자재 가격이 죄다 뛰어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지만,가뜩이나 종이 수요가 줄어드는 마당에 가격 인상으로 수요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판단에 머뭇거리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연초부터 '물가안정'을 위해 주요 산업계의 가격 인상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종이 원자재 값 모조리 상승


28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인쇄용지를 만드는 주 원료인 펄프와 각종 부자재 값이 일제히 올랐다. 인쇄용지는 해외에서 건조 상태의 펄프를 들여와 여기에 라텍스,전분,클레이(종이를 빳빳하게 만드는 돌가루) 등을 섞어 만든다.

원료별 가격흐름을 보면 종이 원가의 60%가량을 차지하는 펄프 값은 작년 2월 t당 805달러에서 올 2월 915달러로 14% 올랐다. 제지공업연합회 관계자는 "국내 제지업체가 사용하는 펄프 중 침엽수는 주 생산국인 북미국가들이 침엽수 벌목량을 줄인 데다 최근 중국의 펄프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몇 달째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펄프 외 부자재 가격도 일제히 올랐다. 라텍스 값은 원료인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작년 3월 ㎏당 1313원이던 것이 올해는 1440원으로 치솟았다. 전분도 지난해 1분기 ㎏당 420원에서 지금은 570원까지 뛰었다. 전 세계적인 이상 한파로 옥수수 값이 오른 데 따른 것이다. 또 백판지를 만드는 데 쓰이는 폐지(고지)도 지난해 2월 ㎏당 170원에서 올해 2월 역대 최고치인 ㎏당 227원까지 올랐으며 클레이도 작년 1분기 ㎏당 260원에서 이번 달엔 300원으로 올랐다. 원부자재뿐만이 아니다. 제지공장에서 건조펄프를 액체상태로 만들기 위해선 뜨거운 스팀(수증기)이 필요한 데 기름 값이 많이 뛰면서 스팀비용도 소폭 오를 기미다. 지난달 벙커C유는 배럴당 110달러를 기록,배럴당 74달러였던 작년 같은 달보다 49% 상승했다.

◆"시장,정부 눈치 보여서…"

A업체 관계자는 "원부자재 가격 외에 인건비 등 제반비용을 모두 합하면 종이 제조원가는 작년 초에 비해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 가까이 올랐다"며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요 제지업체들은 종이 값 인상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스마트폰,태블릿PC 등 IT기기가 확산되면서 종이 수요가 줄어드는데 종이 값을 올리게 되면 수요가 더 줄어들지 않을까라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 소비재와 산업재 가격 인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가격을 못 올리게 압력을 넣고 있는 상황에서 가격을 올렸다 찍히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며 "올릴 이유야 충분하지만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준혁/정소람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