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 움직임만 들여다보면 3년 전과 지금은 흡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2008년 초 수입물가가 급등하면서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가 덩달아 치솟았는데,이번에도 동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그때와 지금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3년 전 물가불안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금세 진정됐으나 이번에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경기가 가파르게 회복되면서 원자재와 곡물가격 상승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폭우가 쏟아지기 직전의 물가 불안이 3년 전 모습이었다면,지금은 바싹 마른 들판에 불씨가 던져진 것과 같은 형국이다.

◆원자재값 급등

지난달 수입물가 급등세를 촉발시킨 것은 국제 원자재였다. 원유가 1년 전에 비해 18.4% 올랐고 동광석과 유연탄은 각각 27.2%와 41.7% 뛰었다. 철광석의 상승률은 102.5%에 달했다. 광산품 지수는 22.9% 뛰어 지난해 12월의 19.8%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농림수산품 수입가격 상승률은 35.5%로 광산품보다 더 컸다. 품목별 상승률은 원면 96.6%,천연고무 79.8%,밀 70.0%,양모 33.1%,쇠고기 30.6%,대두 27.8% 등이었다.

원자재 가격이 치솟다 보니 석유류,화학제품,1차 철강 및 비철금속 제품 등 중간재 가격도 뛰고 있다. 휘발유 20.9%,경유 25.0% 등 석유류가 20% 이상 올랐다. 접착제 생산이나 인쇄잉크 사용 공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메틸에틸케톤이 60.6% 오른 것을 비롯해 화학제품이 평균 12.1% 상승했다. 합금철(21.7%) 후판(23.3%) 선철(24.6%) 등 1차 금속제품은 19.4% 뛰었고 니켈(37.5%) 주석(51.2%) 금괴(19.4%) 등 1차 비철금속제품은 20.5% 치솟았다.

◆소비자물가 불안 지속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수입물가가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시차는 1~3개월 정도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선 그 시차가 한 달 이내로 줄어들었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국제 원자재 가격 지표인 CRB(Commodity Research Bureau) 지수가 변동하면 그 영향이 한 달 내로 바로 나타났다. 게다가 CRB 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국제 유가는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국내 물가에 반영된다. 한은 관계자는 "원유 가격에 충격이 발생하면 불과 1~2주 안에 국내 물가에 곧바로 반영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미 제품 판매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커피전문업체인 탐앤탐스는 지난 14일 일부 커피가격을 인상했다. 고추장 등 장류를 생산하는 한 중견기업도 콩 밀가루 등 재료가격 급등을 견디다 못해 2년 만에 제품가격을 10% 올렸다. 여기에다 국내 이상한파와 구제역 등의 영향으로 채소류 육류 가격이 뛰고 있어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4%대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월의 4.1% 이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분기 소비자태도조사'에서 1년 뒤 물가 전망을 보여주는 물가예상지수가 2년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기준금리 인상 미루기 어려워

원자재값 급등과 풍부한 시중유동성,경기회복 등이 맞물리면서 인플레이션(물가불안)기대심리가 확산됨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이후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정상화시켜 나간다는 방향에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1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만큼 2월에 한 템포 쉬고 향후 다시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3월에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경기 회복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의 고공행진을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기준금리 인상을 더 미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3월 인상을 점쳤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도 "3월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하고 연내 연 3.75%까지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