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간부 A씨는 서울 미아동에 전셋집을 구하려다 포기하고 고양시 화정지구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다. 보증금 3억원짜리 정도를 생각했는데 전세 물건은 자취를 감췄고 월세만 있어서다. A씨는 "중개업소 측이 130㎡ 아파트를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110만원을 달라고 했다"며 "받는 월급과 생활비 등을 따져보면 월세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 아이 학교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전세난 요인된 월세"

저금리로 돈 굴릴 곳을 찾지 못한 집주인들이 전세와 월세를 결합한 '반전세'로 전세계약을 맺으려는 것도 새롭게 등장한 전세난 심화 요인이다.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싼 전셋집을 찾아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 계약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월세 지출 부담이 커지면 세입자에서 벗어나는 기간도 길어질 수 있다"며 "월세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월세가 주택 임대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빠르게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세제도는 집값이 계속 올라야 유지 가능한 제도라는 점에서다. 주택을 가지려면 매입비용,보유세,거래세,수선유지비 등이 든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나비에셋의 곽창석 사장은 "고속성장 시대엔 집값이 계속 올라 전세를 끼고도 집을 샀다"며 "앞으로 연 5~10%가량 집값이 올라야 전세를 낀 주택 매수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집값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 전세주택은 월세로 빠르게 전환되거나 매매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서후석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수도권 아파트 월세 수익률은 연 7% 정도로 추산된다"며 "중장기적으로 집값이 안정되면 월세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 교수는 "월세는 지출이란 인식이 강해 전세 물건에 대한 수요를 늘려 전세난 심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월세 피하자'…서울서 수도권으로

서울 인근 신규 분양 단지에는 최근 전세 물건을 찾는 세입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 용인시 파주시 등에선 중소형 전세 물건은 선취매까지 등장했다. 용인시 수지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전세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며 "찾는 세입자들의 대부분은 급등한 전셋값 차액을 부담하지 못하거나 월세로 나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집을 옮긴다고 대답한다"고 전했다.

그동안 전세와 월세는 공급 물량에 따라 비중이 변해왔다. 분양 대행업체인 내외주건의 김신조 사장은 "전세난이 심각한 시기엔 예외 없이 월세 비중이 높아지고,전세 수급 여건이 원활하면 전세 비중이 높아졌다"며 "월세 비중 증가 현상은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다"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


◆ 전세流民

전셋값 급등과 물량 부족으로 외곽으로 밀려 나는 세입자를 말하는 신조어다. 두 배 가까이 오른 전셋값을 이기지 못해 서울시내에서 외곽으로,다시 수도권으로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임차 형태도 전세에서 반(半)전세나 월세로,주거형태도 아파트에서 연립이나 다세대로 열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