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관련 부당 내부거래 혐의로 제소 당해

월가의 대표주자인 골드만삭스가 파생상품 문제로 덜미가 잡혔다.

그리스에 파생상품을 판매해 부채 규모를 축소토록 일조한 혐의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파생금융상품과 관련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소했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팔면서 부당한 내부거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1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힌 혐의다.

골드만삭스는 강하게 부인하지만 사실로 판명나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연속되는 모럴 해저드여서 미 국민들의 분노를 피해가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금융감독개혁 법안에 강한 추동력까지 보태주게 됐다.

주택금융 파생상품을 판매한 다른 투자은행으로도 조사는 확대되고 있어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 141년 명성에 흠집난 골드만삭스
[Global Issue]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판다고?… 골드만삭스의 ‘모럴 해저드’
20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과 유럽 금융사들도 모기지증권 손실과 관련, 골드만삭스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입장에서는 전선이 확산되며 더욱 궁지에 몰리는 양상이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SEC가 밝힌 골드만삭스의 이번 거래 행태는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 수 있는 곳이 월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알맞다.

한편에선 SEC의 골드만삭스 기소가 민주당과 오바마 정부의 금융개혁 추진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에 힘이 더 실리고 있다.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주 검찰총장은 이날 CNBC에 나와 "세상에 우연은 없다"며 "민주당이 상원에서 금융개혁을 밀어붙일 시점에서 기소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마녀 사냥'과 정당한 법 집행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웃라이어'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도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융개혁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요소가 깔려있을 수 있다"며 "법정에서 불법이 아닌 것으로 판정나도 골드만삭스의 윤리적 문제는 여전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근거없는 소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채권 매매 때와 마찬가지로 주택모기지 증권을 기초로 만든 CDO 거래도 매수자와 매도자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임직원에게 남긴 메시지를 통해 "SEC 고소와 관련한 언론보도를 보고 언짢았다"며 "골드만삭스는 직원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로서 성실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해 온 점을 강조한 발언이다.

⊙ 어음 중개회사로 출발…중간에 위기도

골드만삭스는 질곡의 역사를 딛고 명성을 쌓아왔다.

골드만삭스는 1869년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먼이 사위인 새뮤얼 삭스와 함께 뉴욕 맨해튼에 세운 어음 중개회사로 출발했다.

1929년 10월 주가대폭락에 따른 거래손실로 최대 위기에 빠졌을 때 경영사령탑을 맡은 시드니 와인버그가 투자은행 부문에 집중하면서 활로를 찾았다.

이후 기업공개(IPO), 채권 및 주식 거래, 상품거래, 국제영업 및 인수합병(M&A) 자문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혀나갔다.

하지만 1994년 무리한 채권 투자로 인한 손실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고 일부 파트너들이 회사를 등지기도 했다.

파트너 형태로 운영돼 온 골드만삭스는 1999년 내부 격론 끝에 기업 공개를 추진했다.

2006년 5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골드만삭스의 CEO였던 헨리 폴슨을 재무부 장관에 기용하면서 블랭크페인 현 CEO가 경영을 이어받았다.

금융위기 전까지 골드만삭스는 최대 전성기를 맞았다. 2007년 신용 및 주택시장 활황에 힘입어 459억달러 매출에 116억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금융위기 때도 두각을 나타냈다. 신속하게 은행 지주사로 전환해 정부의 구제금융자금을 받았고 워런 버핏도 원군으로 끌어들였다.

지난해 4분기 사상 최대 규모의 분기 순이익을 낸 데 이어 올 1분기 순이익도 34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증가했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모기지 관련 CDO의 부도위험을 신용디폴트스와프(CDS)를 사는 방식으로 AIG에 떠넘겼다.

이로 인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촉발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때마다 골드만삭스는 적극적으로 어려움을 돌파해 왔다.

이번에도 골드만삭스는 2년 전부터 진행됐던 CDO 조사가 금융개혁을 앞둔 현 시점에서 기소로 이어졌음을 부각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 로비 · 선거자금…전 정부 책임론까지

한편 골드만삭스의 막대한 로비자금이 민주 · 공화 의원들은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도 건네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골드만삭스가 1989년 이후 선거자금으로 총 3160만달러를 정가에 뿌렸다고 20일 보도했다. AT&T에 이어 두 번째 많은 금액이다.

골드만삭스는 로비자금 중 3분의 2를 민주당 의원들의 주머니에 넣었으며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이 선거자금을 '민주당 의원들의 골드만 낙하산'이라고 비아냥거렸다.

WSJ는 또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 대선 후보 때 골드만삭스에서 약 100만달러,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역시 당시 대선 후보로서 50만달러에 이르는 후원금을 받았다고 전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어느 누구보다 골드만삭스 돈을 많이 끌어들였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과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골드만삭스 선거자금에서는 피차일반이다.

하원의 공화당 2인자인 에릭 캔터 의원은 1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당 리처드 셸비 상원 금융위원은 3만5000달러를 챙겼다.

안절부절 못하던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골드만삭스 기부금을 되돌려주기로 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공석이 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공화당의 마크 커크 후보는 2만1600달러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문제가 된 골드만삭스 파생상품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주고 반대방향 투자로 10억달러를 벌어들인 존 폴슨도 최근 몇 주간 양당 의원들을 위해 선거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

골드만삭스 사건은 전임 정부의 책임론으로도 번졌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 ABC방송에 출연해 "로버트 루빈과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들이 파생상품 규제에 대해 조언을 잘못 해줬고,내가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도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털어놨다.


용어 풀이

CDO(부채담보부 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회사채나 금융기관의 대출채권,자산담보부증권 (ABS)이나 주택저당증권 (MBS) 등을 묶어 만든 유동화 채권으로 신용파생상품의 일종.특히 기초자산이 회사채인 경우 채권담보부증권(CBO · 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신용등급을 높이기 위해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들이 보증을 서기도 한다.

CDO는 담보로 사용된 대출이나 회사채가 제때 상환되지 못할 경우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진다. 수익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Arbitrage CDO'와 신용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하기 위해 발행하는 'Balance Sheet CDO(B/S CDO)'로 나뉜다. CDO는 2006년 미국 등에서 1조달러(약 917조원)어치가 발행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진 후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주요 금융회사 등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 1990년대 중반 첫 선을 보인 후 미국,유럽 등지에서 발행 규모가 증가해 왔다.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