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 기술 95건이 미국계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릴즈 코리아(AMK)를 거쳐 하이닉스반도체에 6년 동안 무더기로 넘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경쟁사 간 직원 매수 등의 방식이 아닌 장비업체를 통한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이 수사기관에 적발되기는 처음이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3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총 95건을 빼돌려 이 중 13건을 하이닉스에 건넨 혐의(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AMK 전 대표 곽모씨(47)와 이 회사 팀장 김모씨(41)를 구속 기소하고 직원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이들로부터 기술을 건네받은 하이닉스 제조본부장 한모 전무(51)와 AMK에 기술을 건넨 삼성전자 과장 남모씨(37)를 구속 기소하고 두 회사 직원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아울러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다 기술을 유출하고 AMK로 옮긴 뒤 미국에서 도피 중인 나모씨를 지명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곽씨는 김씨 등 직원과 공모해 2005년 3월부터 최근까지 D램 68 · 56 · 46 나노공정 및 낸드플래시 63 · 51 · 45 · 41 · 39 나노공정 순서와 사용 설비,물질 정보 등 국가 핵심 기술 53건을 포함해 95건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장비 설치와 관리 등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구실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공장에 수시로 드나들며 문서와 기술을 몰래 빼내거나,친분이 있는 직원에게 정보를 캐는 방법으로 기밀을 빼돌렸다.

검찰은 기술 유출로 인한 삼성전자의 직접적 피해는 최소 수천억원에 달하며,후발 주자와의 기술격차가 줄면서 발생하는 간접피해 등은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검찰은 외국 반도체 업체 등으로 2차 유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현실적인 여건 등을 이유로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