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 삼성전자는 제품과 서비스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종합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변해있을 것이다. "

삼성의 5년 후,10년 후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삼성종합기술원(경기도 용인 소재).1986년 종기원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 시절부터 이곳에서 일해온 길영준 CTO전략팀장(전무)은 삼성전자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40년을 달려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미래는 '고객의 니즈를 통째로 채워줌으로써 삶의 스타일과 조직의 메커니즘을 효율화하는 토털솔루션을 파는 회사'라는 얘기다.

그는 "휴대폰에는 개인이 원하는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함께 들어가고,TV는 일방이 아닌 양방향으로 교류하며,반도체는 솔루션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전지도 다른 기업들처럼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용,주택용,휴대용으로 세분화해 시장의 수요를 완벽히 충족시켜 나감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겠다는 설명이다.

이런 변화를 앞서 준비하는 삼성종합기술원은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의 지시로 1987년 설립됐다. 이후 수많은 연구성과를 내며 삼성전자가 디지털시대의 일류기업이 되는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삼성전자를 TV시장의 확실한 글로벌 리더로 올려놓은 LED(발광다이오드) 사업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LED를 시집보내 TV시장 제패

삼성종합기술원이 본격적으로 LED 개발에 나선 것은 2000년대 초.삼성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조명용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슬림TV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 집중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조명용으로 준비한 기술을 TV와 접목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특허였다. 일본 업체들이 원천기술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유럽 회사들과 협력해 국면을 돌파했다. 또 삼성전기와 협력해 자체적으로 칩구조를 바꾸고 LED 기술을 백라이트 유닛 및 TV에 적용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목시켰다. 그 결과 LED 기술을 TV에 적용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마지막 걸림돌은 가격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몫이었다. 2007년 종기원 LED 사업과 인력은 모두 부품업체인 삼성전기로 옮겨갔다. 길 전무는 "LED 사업은 우리가 키워서 사업부로 시집보낸 대표적 사례다. 그게 종기원의 역할이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디자인을 개발하고 칩의 발열을 줄이는 등 실용화에 나선 끝에 2009년 전 세계를 상대로 마케팅에 나섰다. 브라운관 이후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한 LCD TV시장의 팽창 변곡점을 삼성이 LED란 새로운 기술로 열어나간 것이다.

MLCC와 컬러TV 기술도 종기원이 원천

아버지만큼이나 기술을 중시한 이건희 전 회장은 1990년대 초 "연구개발과 디자인 설계의 핵심은 사람이다. 러시아 쪽으로 눈을 돌려라"고 지시했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러시아의 기술인력을 흡수하라는 지시였다.

종기원은 러시아에 사람을 파견했고,이때 얻은 성과가 컬러 기술이었다. 종기원은 러시아 측 파트너와 공동작업을 통해 1995년 TV 색상을 디지털 신호로 처리,보다 선명하게 재현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물론 당시에는 디지털 TV가 나오지 않아 당장 상용화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기술을 확보한 것은 2000년대 초 디지털 TV 시장의 부흥기를 맞아 삼성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1위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TV에 붙어있는 'DNIe'라는 글자는 'Digital natural image engine'의 약자로,디지털 TV는 물론 모바일 LCD,아몰레드 등의 색상 처리 기술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전자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도 종기원이 싹을 틔워 삼성전기로 이관한 사업이다. 삼성전기는 이 사업을 넘겨받아 일본 기업들이 장악한 시장에 뛰어들어 최근 세계 2위까지 뛰어올랐다. 종기원 관계자는 "이 사업은 1980년대 후반 개발을 시작해 20년 가까이 지나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상기록 매체인 DVDR도 종기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종기원이 시제품을 만들자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 삼성전자가 사업을 이어받았고,현재 디지털 미디어 사업의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 DVD 플레이어와 블루레이 디스크 플레이어 등이 이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밖에 리튬 2차 전지 소재사업과 컬러 레이저 프린트 사업도 종기원에서 시작됐다.

격변기 '퀀텀 점프'를 위한 준비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삼성 일등제품의 특징은 기술 발전의 불연속성을 파고 들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고 말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기에 휴대폰이 약진했고,브라운관 TV가 사라져가는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LCD가 1위에 오른 것 등을 일컫는 얘기다.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시기가 아니라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해가는 시기가 삼성전자에 큰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삼성이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종기원을 통한 장기적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고,지금도 종기원은 또 다른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종기원은 고령화 등 인구 구조나 기후 변화와 같은 장기적 흐름을 내다보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며 "향후 다가올 새로운 산업 사이클에 맞춰 삼성의 종합적인 역량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종기원은 이 같은 산업후보군으로 바이오를 포함한 헬스케어사업과 태양전지 등 에너지사업,신소재사업 등을 꼽고 있다.

용인=김용준/김태훈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