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조(李定祚) <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 >

은행들이 '유동성 위험'이라는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고객의 신용위험은 철저히 따지면서도 자신들의 유동성위험 관리를 소홀히 한 결과로 돈줄이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그동안 국내 금융산업에서 누려온 위상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란 경고는 올초부터 제기돼 왔다.

일부 투자자들은 은행주 투자를 꺼릴 정도였다.

국내 은행들은 요즘 198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미국의 은행들이 겪었던 위기를 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의 실패사례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걷지 않아야 할 길을 뒤따라 걷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최근 금융환경에 비춰 은행들의 호시절은 끝난 듯하다.

심각한 것은 은행들의 경영환경 악화가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경제에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 경영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금융기관의 윤리경영이 필요하다.

이익 창출을 앞세워 국민경제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면 안 된다.

외환위기 이후 카드사태는 씻을 수 없는 과오였다.

은행은 수수료 수입으로 수익구조를 다변화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가처분소득 감소로 고통을 받고 있다.

상환능력을 따지지 않고 담보만 잡고 마구잡이로 판매한 주택담보대출은 투기수요를 부추겨 집값 폭등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변동금리에 따른 가계이자 부담 증가는 국민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뿐만 아니다.

공과금 납부는 은행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거절하겠다는 은행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객을 신용평가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평가자료로 큰 자산인 데도 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단기성과만을 노린 금융기관 경영의 실패사례다.

둘째,유능한 요리사와 컨설턴트가 돼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요리사가 돼야 하고 고객 입장에서는 컨설턴트가 돼야 한다.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남과 다르게 먼저 해야 한다.

경쟁사가 하고 난 후에 뒤따라 시작하면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하면 봇물 터지듯 몰려든다.

자신이 없기도 하겠지만 실패할 경우 책임이 무서워 그런 것 같다.

신용평가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의사결정에 대한 문책이 무서워 외국에서는 하나의 지표에 불과한 책임 추궁이 없는 통계모형에만 의존하고 사람에 의한 판단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유동성위기도 마찬가지다.

과거 부실채권 매각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업에 자산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하도록 도와주면서 자신들의 자산을 유동화시켜 자금조달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본업인 대출에도 전환사채(CB) 또는 주식인수옵션부 대출과 거래기업 이익의 일정부분과 연동된 이자율결정 등 과감한 파생상품개발을 선도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금융사 경영경험을 외국에 수출하는 사업도 할 수 있다.

바로 금융전문 컨설팅회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 인력의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금융사의 의사결정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리스크함정시대다.

'운9기1'시대라고까지 한다.

리스크가 없는데는 이익도 없다.

운용측면에서 리스크없는 고객은 고객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도 과거에는 정상기업만이 고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망해가는 기업까지도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고객이 될 수 있다.

'적자기업이 다이아몬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금융기관은 위험을 즐기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고객을 통제가능한 리스크관리 범위 내로 끌어들이면서 친구가 돼야 한다.

리스크 발견자가 아닌 리스크 해결사가 금융기관의 효자가 되는 세상이다.

이제는 아메바처럼 환경 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자기 몸을 바꾸지 않으면 죽는다.

환경 변화를 선도적으로 주도해야 한다.

그러면 생존할 뿐만 아니라 승리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준비된 자만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

큰 것보다 강한 경쟁력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