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닥친 유례 없는 가뭄에 세계 반도체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 물은 주요 자원이다. 대만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TSMC와 3위인 UMC가 있다. 두 회사는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가뭄으로 대만의 물 부족이 심각해지면 TSMC와 UMC의 반도체 칩 제조에 차질이 생겨 이미 세계 산업계를 흔들고 있는 반도체 품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뇌관이 될 수 있다. 대만의 6월 우기에도 강우량이 시원찮으면 상황이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공업용수 대는 저수지 바닥 드러내

대만 가뭄에 TSMC '셧다운 공포'…세계 반도체 공급 말라붙나
17일 대만 경제부에 따르면 대만 중남부지역의 저수율(저수지의 총 용량 대비 현재 수량)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TSMC와 UMC를 비롯한 대만의 주요 기술기업이 모여 있는 신주사이언스파크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바오산 저수지의 저수율은 이날 오전 10시 기준 10.1%다. TSMC의 또 다른 반도체 팹(공장)이 있는 타이난, 타이중 등 중부지역의 6개 저수지 중 4곳의 저수율은 15% 이하다. 대만 언론들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저수지 상황을 연일 전하고 있다.

혹독한 가뭄은 지난해 태풍이 대만을 비껴가면서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아 발생했다. 태풍은 대만 수자원의 주요 원천이다. 지난달부터 지금까지 강수량은 예년의 20% 수준으로 줄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56년 만에 가장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맞았다”고 토로했다.

당분간 대만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이다. 훙에이첸 대만 국립방재과학기술센터(NCDR) 원장은 “이달 하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북부지역에 집중될 전망이라 다른 지역 상황을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5월 말까지는 버틸 수 있다지만

반도체산업의 물 사용량은 상당히 많다. TSMC만 해도 하루 15만6000t의 물을 쓴다. 신주사이언스파크 기업 전체가 쓰는 물 사용량에서 TSMC 몫만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세계 반도체 칩 시장의 56%를 차지하고 있는 TSMC가 물 부족 탓에 공장 가동을 멈출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아직까지 TSMC와 UMC의 반도체 칩 생산에 별다른 차질이 발생하진 않았다.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 장관은 “5월 말까지 기업들이 사용할 물은 충분하며 이번 가뭄이 TSMC 등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했다. 보통 6월부터 대만에 태풍이 찾아오면서 강우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한시름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기에 가뭄이 해결될 것이라고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TSMC는 지난달 말부터 비상 계획을 가동했다. 핵심은 물차량이다. 지하수와 우물물을 실은 트럭이 생산기지를 돌며 물을 공급하는 방안이다. UMC도 물차를 동원할 예정이다. 공업용수 재사용 확대도 대안 중 하나다.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대만에 반도체 공급 확대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주요 자동차 기업들의 생산에 큰 차질이 생겨서다. 일본 혼다자동차는 반도체 부족으로 오는 22일부터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공장을 1주일간 가동 중단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최근엔 스마트폰용 반도체에까지 품귀 현상이 옮겨붙었다.

대만 정부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신주사이언스파크 부근에 임시로 우물을 파서 공업용수를 조달할 수 있도록 허가하기로 했다. 담수로 만든 바닷물과 재활용수를 공급하고 물이 충분한 다른 지역의 저수지에서 공수해오는 방안, 인공강우까지 검토하고 있다. 대만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농업용수 사용량을 조인 데 이어 공업용수 사용량 감축 명령을 내렸다. 물 부족이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히는 타이중시는 기업들에 물 사용량을 5~20% 줄일 것을 권고했다. 타이중시의 수영장, 세차장 등 비필수업종의 물 사용량은 20% 감축당했다. 특정 시간에만 물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적색경보 발령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