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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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에서 '동맹'은 돈이 될 때 쓰는 말입니다. 돈이 안된다면 정치인들의 사적 모임 신세로 전락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있지만 국제관계에선 '피보다 진한 것은 돈'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국제관계입니다.

중국의 삼국지 역사를 살펴보면 동탁이 정권을 잡아 전횡을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원소를 포함한 18개의 나라가 '반동탁 동맹군'을 결성합니다. 하지만 월등한 군사력에도 반동탁 동맹국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구성원들 때문에 결국 무너집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를 두고 나토와 유럽연합(EU)이 '반동탁 동맹군 증후군'을 보이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대응해 유럽이 미국과 똘똘 뭉치지 않고 각자 방식대로 사태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EU는 아프가니스탄 사태 등 중동에서 헛발질한 미국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같은 배경에는 EU동맹국들의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범처럼 설치고,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는 손 놓고 멀찌감치 관망하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을 맞은 북반구 유럽은 러시아의 총알보다 강추위가 더 무섭기 때문입니다.

체코의 경우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100%입니다. 핀란드는 67%, 독일은 65%, 이탈리아 43%, 프랑스 17%, 스웨덴 13%, 스페인이 10%의 의존도를 가집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EU는 천연가스의 38%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장치에 들어가는 주요 금속인 팔라듐의 40%로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습니다. 첨단기기에 들어가는 마그네슘의 93%, 티타늄의 50%, 바나듐의 32%, 알미늄·니켈의 17%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소재가 없으면 유럽의 전기차와 탄소중립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럽, 러시아의 총알보다 '강추위'가 더 무섭다?

절대 강자는 동맹이 필요 없습니다. 수 틀리면 쇠 주먹 휘둘러 한방에 끝내면 됩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동맹전략은 훌륭해 보이지만 미국 100년 패권의 균열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경제적 이익이 겹치면 미국의 동맹군은 삼국지의 '반동탁 제후동맹'과 같아집니다. 대의명분에는 동참이지만, 정작 피 흘리고 돈 내야 하는 전쟁은 '노 땡큐'입니다.

따라서 미국 바이든의 동맹은 구멍이 숭숭 난 전략으로 보입니다. 4년 주기의 표심에 목숨 걸어야 하는 선거시스템도 구멍입니다. 4년 뒤에 낙선하면 그간 떠들었던 모든 것 다 뒤집어집니다. 미국의 대중정책, 누가 되든 똑같을 거라는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트럼프의 정책은 바이든의 시대 홀랑 뒤집혔습니다. 대중국정책도 마찬가지 입니다. 트럼프는 무역전쟁으로 난리를 쳤지만, 바이든은 집권이후 대중국 보복관세, 통상문제는 언급하질 않고 있습니다.
미·중의 1단계 무역합의 이행상황. /자료=PIIE
미·중의 1단계 무역합의 이행상황. /자료=PIIE
반면 중국은 과거 트럼프 행정부와 약속했던 1단계 무역합의 2000억 달러의 대미수입(2020~2021년)을 지키질 않았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핑계로 이행률이 겨우 57%에 불과했습니다.

바이든도 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업적보단 자기 방식의 밥상 차리기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은 무역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기술전쟁과 동맹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루는 상황도 참 요상합니다. 전쟁은 비밀리에 전광석화처럼하는 것이지, 서로 정상 회담하면서 언제 전쟁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이든과 푸틴은 성과 없는 회담을 한 시간씩 전세계 언론이 보는 앞에서 했습니다.

국제관계, 피보다 진한 것은 돈…美 동맹전략 통할까

중국은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과 5년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2021년까지 200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축소하라는 것이,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 합의서였지만 결과는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중국은 코로나19 핑계를 대며 미국과의 합의를 대 놓고 무시했습니다. 대미수입 이행률이 겨우 57%에 불과하지만 사과나 해명 한 줄이 없습니다. 반면 미국의 대중무역 적자는 2019년에 조금 줄어들었을 뿐, 최근 2년간(2020~2021년) 오히려 더 늘어났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켜준 2001년 이후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총 4조1212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습니다. 이는 중국의 20년간 전체 무역흑자의 70%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또 작년 말 중국의 외환보유고인 3조2501억 달러의 127%에 달하는 액수입니다.

미국이 중국의 대중적자를 줄이지 못하는 것은 '월마트 효과' 때문입니다. 월마트에서 파는 미국인의 일상용품 47%가 '메이드인 차이나'입니다. 스마일 커브의 양끝단을 미국이 장악하고 아랫단의 생산을 전량 중국에 맡긴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무역전쟁에서 미국은 중국을 굴복시키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바이든이 말하는 기술전쟁도 반도체가 핵심이긴 하지만, 여기에도 '애플효과'가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으로 가는 반도체를 금수조치하면 중국을 한방에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애플의 주가는 폭락하고, 미국 테크 관련주의 주가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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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대표작 아이폰은 미국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주문자상표 부착 생산(OEM)하기 때문입니다. 또 반도체 금수조치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겠지만, 중국을 완전히 좌초 시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 SMIC는 2020년 미국 상무부의 제재리스트에 올랐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제제에도 불구하고 작년 순이익은 전년보다 138% 증가한 17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39% 증가한 54억 달러로, 2019년 이후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중국 내수시장 확대와 중저가 전자기기 수요 확대에 힘입어 100%의 가동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중국을 해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금융'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중국은 외환시장,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이 중국을 털어먹기 위해선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중국 금융시장에 대한 개방환경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년 중국의 GDP는 미국 GDP 74%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 추세면 10년 안에 중국 GDP가 미국의 GDP를 추월할 수 있습니다. 이달 11일 블룸버그는 중국에 금융위기가 오거나 성장률이 떨어지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중국의 미국 추격은 불가능할 것이란 예측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블룸버그의 기본 시나리오는 10년내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것으로 잡고 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의식이 족해야 예의를 차립니다. 미국이 중국을 무역과 기술전쟁에서 좌초 시키지 못하고 향후 5~7년 이내에 중국의 GDP가 미국의 90%대에 달하게 되면 미국 동맹의 심각한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피보다 진한 돈' 앞에서 미국과의 동맹보다 중국 돈 냄새를 따라가는 동맹국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같은 상황이 오면 미국이 자랑하는 '중국은 없고 미국은 있다'는 동맹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맥없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영악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한국의 중국 전략법

한국의 대미, 대중 관계에 신의 한수는 없습니다. 모기는 남의 피를 빨 때 잡혀 죽고, 물고기는 미끼를 물 때 잡혀 죽습니다. 유혹에 약하면 당합니다. 미·중 양대 강대국이 약한 나라 줄 세우기를 시작했습니다. 오는 3월 대선을 통해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미국과 중국의 유혹이 한반도를 넘실거릴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동맹을 통한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은 올해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이달 11일 미국 백악관이 '인도-태평양 전략 2022년'을 발표했습니다. 중국의 봉쇄를 위한 협업 대상으로는 5개 동맹국(한국·일본·호주·필리핀·태국)을 먼저 거명한 뒤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몽골, 뉴질랜드,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등 태평양 도서국가들을 파트너로 예시했습니다. 이중 한국은 1순위군에 들어가 있습니다.

편 가르기의 유혹 다음에는 처절한 보복이 기다립니다. 니편, 내편 가르기 할 때는 웃지만 내편이 아니라 남의 편이 되는 순간 원수로 돌변합니다. 영악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고 합니다. 우리는 토끼의 지혜를 본받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나 '친미친중'이든 한 쪽을 선택한 뒤 후유증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대비를 하고 영악한 토끼처럼 뒷구멍을 만들어놔야 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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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단단한 '결기'입니다. 국민의 일치단결한 결기가 강한 나라를 만듭니다. 정신이 강한 나라는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함부로 넘보기 어렵습니다. 정신이 썩은 나라는 아무리 큰 나라라도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 뭐라고 해도, 맹수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고슴도치와 같은 단단한 결기와 똘똘 뭉침이 필요합니다. 미·중은 관심도 없는데 우리끼리 편갈라 친중친미, 반중반미 싸움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두 번째는 필살기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절절히 원하는 것을 가져야 당당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의 'ㅂ'자 산업이 한국의 필살기이고, 맹수도 건드리지 못하는 고슴도치의 가시입니다. 한국 반도체는 궤도에 올랐고, 이제 배터리와 바이오에서 새로운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배터리와 바이오에서 반도체의 삼성전자 같은 회사 둘만 더 만들면 미국이든 중국이든 두려울 게 없습니다.

세 번째는 제갈공명입니다. 올해 한국의 대선 이후 미·중의 압박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한국이 우왕좌왕하면 양쪽에서 다 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사는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판단에 따라 입지를 어렵게 만들 수도,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추이. / 표=중국관세청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추이. / 표=중국관세청
우리는 미·중의 전쟁에서 사이에 끼여 터질 걱정보단 난세의 영웅과 거상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대중전략 판을 뒤엎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합니다.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수많은 인재들이 대선 후보자들 캠프에 몰려들고 있습니다.

삼국지 역사에서 유비가 없었으면 공명은 서당훈장으로 인생을 끝냈고, 장비는 고기 팔고, 관우는 광주리를 엮고 있었을 것입니다. 서역까지 가는 긴 노정에서 서유기팀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손오공은 그냥 성질 더러운 원숭이로, 당승은 그냥 평범한 중으로 살았을 겁니다.

결국 리더가 중요합니다. 리더의 안목과 식견이 나라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미·중과 협상할 전략가 제갈공명, 힘쓰는 장비, 의리 지키는 관우가 필요합니다. 팀끼리 자리 나누기 싸움이 아니라, 자기희생이 필요합니다. 감자와 토마토는 그냥 있으면 헐값이지만 자기 희생으로 감자튀김과 케찹으로 만나면 대박입니다. 그래서 팀의 구성과 협업이 중요합니다

사리진 중국 전문가들…네트워크 활용할 때

사드 사태 이후 한국의 대중관계를 보면 답답합니다. 작년 요소수 부족 사태를 보면 한·중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한·중 수교 30년간 그 많았던 중국통, 중국외교전문가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중국은 지도자가 바뀌면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나라입니다. 이미 시진핑 집권 10년간 '저장신군', '시자쥔', '칭화방'이 중국을 읽는 키워드가 된 지가 한참 흘렀는데, 아직도 한국의 대중국 네트워크는 장쩌민 시대 한·중 수교 할 때의 무용담에 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을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철저하게 진짜 중국통으로 구성된 팀을 짜야 합니다. 중국의 정·재계를 쥐고 흔드는 중국의 4대, 7대 명문대에서 공부한 100명 이상의 박사들로 구성된 중국 싱크탱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중국의 생각을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최근 10년간 중국에서 주재한 한국기업 임원들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활용한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중국은 중앙의 정책보다 지방의 대책이 더 힘을 씁니다. 중국의 주요 핵심 거점지역에서 몸으로 체득한 중국의 문화, 관행, 대관업무의 노하우는 돈으로 사기 어려운 보석입니다.

나아가 한국에 유학 왔던 중국유학생 네트워크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공부한 중국유학생은 그 누구보다도 한국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인이 중국에서 무엇을 잘 못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지적해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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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유학생을 제대로 조직하고 관리·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를 방치하고 무시하면 굴러온 호박을 발로 밟아 깨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반중정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 문화공정은 말로 떠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극중'(克中)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 다시는 못하게 제재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온라인상의 말싸움 백날 해 봐야 아무 의미 없습니다.

결국 믿을 것은 '동맹'이 아니라 우리 자신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그간 30년간 축적한 대중국 경험과 노하우를 잘 활용한다면 극중을 넘어선 당당한 한국의 위상 확보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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